▲성수산, 대판이봉 능선, 멀리 성수산 태조봉이 보인다.
이완우
임실 성수산(876m) 상이암은 고려와 조선의 개국 설화가 전해오는 구룡쟁주(九龍爭珠) 명당과 기도 터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이 산 깊은 계곡에 펼쳐진 왕의 숲 휴양림과 국민여가캠핑장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생태 관광지로서 위상이 튼실하다.
이곳 성수산에 단종 임금의 충신인 현감 형제가 은거한 은적동(隱跡洞)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1455년)하자, 함길도 이성(利城) 현감인 송시(宋偲, 1415~1485 추정)와 평안도 은율(殷栗) 현감 송희(宋僖, 1420~1490 추정) 두 형제는 관직을 내려놓았다.
형제는 이곳 성수산 동쪽 은적동(수문이 , 옛표기 수므니)에 가족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성수산 상이암에 은거(隱居)하였다고 한다. 두 형제 현감이 함길도와 평안도에서 가족을 거느리고 천 리 길 임실현의 골짜기 깊은 성수산을 찾아 이동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은적동은 성수산 태조봉 아래 상이암에서 대판이봉(793m) 능선을 넘어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 5km의 위치에 있다. 은적동의 향토 지명인 '수므니'는 은자(隱者)라는 의미의 '숨은 이'의 연음 표기이며, 원순모음화 현상을 거쳐 '수문이'라는 현재 지명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성수산 은적동은 성수면 오봉리의 왕방저수지 위 대판이 계곡 어귀의 돈학정(遯壑亭) 앞 골짜기 깊숙히 있다.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하는 초복 절기에 송시와 송희 두 현감이 은거하였다는 은적동은 산수국이 지천으로 피기 시작하는 여름의 생명력으로 출렁거렸다.
예전에는 성수산 은적동에서 대판이봉 능선을 넘는 고갯길이 있었다. 은적동에서 대판이봉 능선의 불당골재를 넘으면 구룡연못에 이르고, 대판이재를 넘으면 성문동 계곡 어귀에 이르렀다. 송시와 송희 현감 형제는 이 옛 고갯길을 넘어서 은적동(수문이)과 상이암의 험준한 5km 산길을 수없이 왕래하였을 것이다.
현재는 은적동 어귀에서 상이암까지 9km의 구름재 임도가 있지만, 장맛비를 맞으며 산길을 걷기는 어렵다. 은적동 어귀에서 왕방저수지 옆을 지나 성수산 휴양림으로 향하는 지방도로(태조로)를 성수산 상이암으로 이어진다. 성수산 휴양림에서 상이암 오르는 길목에서 송시와 송희 형제가 대판이봉 능선 고개를 넘어왔던 구룡연못과 성문동 계곡 어귀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