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초상화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처음으로 그린 어머니 모습
박승일
첫 번째로 완성한 초상화는 어머니였습니다. 올해 3월 초 어머니 생신에 맞춰 1월 말부터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계획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신에 맞춰 첫 작품을 완성하고 어머니께 선물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유화의 특성상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최종 완성하기까지는 한 달여가 소요됩니다. 기본적으로 유화는 기름으로 그리다 보니 물감이 마르고 굳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재료로 그림을 그려보지 않았지만, 유화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없는 듯합니다.
아크릴 물감으로도 그림을 그려봤는데, 그건 그리면서 바로 마르다 보니 수채화보다도 빨리 마릅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내 완성할 수 있지만 유화는 매우 천천히 마르고, 그만큼 시간과 공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점이 맘에 들어 유화를 시작했었고 지금도 가장 큰 매력이라고 봅니다.
처음에 '어머니의 어떤 모습을 그릴까'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80대 후반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서 선물하는 것은 괜히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장 젊었을 때의 모습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60대 후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지도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셔도 제가 싫다고 했던 탓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무쪼록 몇 장 없는 어머니의 사진 중에 가족들이 함께 수목원에 놀러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그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한 달 반이 걸렸고 간신히 어머니 생신에 맞춰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생신 맞춰 꽃다발과 그림을 이쁘게 포장해 고향을 갔습니다. 그림 크기가 20호(61㎝*71㎝)였는데, 포장은 돼 있었지만 누가 봐도 액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감동하실까? 설마 펑펑 우시는 건 아니겠지? 언제 그림을 배워서 선물까지 하냐면서, 기뻐하시겠지?'라는 다소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그림을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보시던 어머니
"어머니. 생신 선물이에요. 한번 풀어 보세요"라고 하자,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는 현금이 좋은데 매번 현금을 주더니 오늘은 액자라니, 난 현금이 좋은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몇 년 전부터 어떤 선물보다도 현금으로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누나들도 현금으로 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손자, 손녀들 용돈이며 노인학교에서 친구분들과 식사도 하고 살 것도 의외로 많아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문구점에서 포장지를 사고 직접 포장한 거라고 몇 번을 말한 탓인지 어머니께서는 조심스럽게 개봉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달 반 동안 그린 그림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림을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보시던 어머니께서는 긴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아니, 누가 그림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냐? 그래도 여자인데 이쁘게 그려야지."
"아니 어머니, 그림은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거죠. 제가 사진 보고 그린 겁니다."
"말을 말아라 그냥. 저기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옆에 갖다 놓아라."
"네? 밖에 그림을 두라고요? 감동 아니세요?"
"아니 지금보다 더 이쁘게 그렸어야지. 나는 하나도 맘에 안 든다."
"그래도 한 달 반 동안 열심히 배워서 그렸는데 서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