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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아픈 집 문제 해결해 준 고마운 제비

부모님이 40년간 살고 있는 시골집에 둥지를 튼 제비 이야기

등록 2024.07.26 08:25수정 2024.07.2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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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부부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이 40년간 살고 있는 시골집 처마 아래에. 출입구 방충망에 짓기에 신문지를 슬쩍 발라뒀더니 처마 밑 가스배관으로 방향을 틀었단다. 머리 좋은 녀석들. 거기가 나름 그 구역 아랫목인 건 또 어떻게 알고.


엄마는 흰 똥을 찍찍 싼다고 툴툴대면서도 제비들 새끼를 걱정했다. 뒷집 할매네 제비들은 작년에 새끼를 실패했다나? 두 마리가 부지런히 집을 짓는 동안, 엄마는 제비들이 불안할까 봐 마당에 나가고 싶은 것도 참았다. 그러고는 동생과 내게 제비 가족 내 집 마련 과정을 중계했다. 마치 앞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 염탐하듯.

"두 마리가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돌아가면서 짓는다."
"밤에도 집 짓는 옆에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가 자는지 있다."
"집은 다 지은 것 같은디 오늘 저녁엔 제비가 한 마리도 안온데이."
"우리 집 제비 새끼 한 마리만 부화되가 한 마리만 봤데이."

 
a 제비 제비 새끼는 네 마리가 되었다

제비 제비 새끼는 네 마리가 되었다 ⓒ 김예지


한 마리였던 제비 새끼는 다음날 두 마리가 되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네 마리가 되었다. 네 마리가 모인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가져갈 때마다 제비 부부가 파닥거리며 엄마에게 달려든다고 했다. 자기 새끼들을 해코지할까 봐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겁이 나는 건 엄마 쪽도 마찬가지였다. 눈이라도 쪼일까 봐 유리문 너머로 조심스레 찍어 보낸 사진 속에는 갓 태어난 제비들이 입을 쫙쫙 벌리고 있었다. 나는 확신이 들었다. 제비 새끼들이 잘 자라겠다는.

엄마는 뭐든 키우는 데는 타고난 재주를 가졌다. 다 죽어가던 식물도 엄마 손을 타면 금세 보송보송해졌고, 학교 앞에서 산 500원짜리 병아리도 엄마의 마당에서 기어이 닭이 되었다.

동생과 나만 봐도 크게 아픈 곳 없이 적어도 각자 앞가림은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잘 컸지, 우리 엄마가 잘 키운 거지. 이렇듯 정이 붙으면 열과 성을 다해 제대로 키워내고 마는 우리 엄마 마음에 이번에는 제비가 들어앉은 거다.


엄마에게 마음 줄 상대가 생긴 건 반가운 일이지만 걱정도 되었다. 마음을 많이 주는 만큼 떠날 때의 서운함도 커질 거였다. 딸들도 제 살 길 찾아 떠나 한 달에 한번 얼굴 비출까 말까인데 제비야 오죽할까. 때가 되면 뒤도 안 보고 가버릴 한철 짐승인데.
 
a 제비 제비 새끼는 한 달이 채 안 되어 둥지를 떠난다

제비 제비 새끼는 한 달이 채 안 되어 둥지를 떠난다 ⓒ 김예지


그러나 제비는 달랐다. 6월 말,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몇 년간 엄마는 집과 관련된 법률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나 역시 이름난 법률사무소를 찾아다니고 조문과 판례를 뒤지며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했지만 결국엔 두 손을 들고 만 문제였다.

이제는 엄마도 저편으로 미뤄두고 거의 포기했던 문제였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거다.


"제비 집 짓게 두길 잘했제."

엄마는 뜻밖의 경사가 제비 덕분이라고 확신하는 눈치다. 풉, 웃고 말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그럼직하다. 거주하는 집에 얽힌 복잡한 문제가 없는 편이 제비들의 주거 안정성을 위해서도 아무렴 나았던 걸까? 그나저나 우리 아파트에 둥지 틀어줄 제비는 어디 없나?

신세를 졌다고 생각해선지 엄마의 제비 사랑은 더 극진해졌다. 6월 말, 진드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진드기에 물려 죽은 사람 얘기가 뉴스에 나오는데도 엄마는 잔디 깔린 마당에 약을 치지 않았다. 독한 냄새가 제비들한테 해로울 것 같다면서.

우리 엄마의 관심과 자기네 부모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쑥쑥 자란 제비 새끼들은 한 달이 채 안 되어 둥지를 떠났다. 낳자 곧 이별이라니. 제비는 생각보다 독립이 빠른 새였다. 

둥지에 남은 제비 부부는 새 알을 낳아 또 품고 있단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오늘도 제비 부부가 놀랄까 봐 마당에 나가고 싶은 걸 참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nostop
#제비 #제비새끼 #새끼제비 #제비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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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 좋은 아내, 착한 딸이기 전에 행복한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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