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막스 클링거 1890
한성은
우리나라도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처럼 널리 알려진 화가들 외에도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수원시립미술관의 나혜석, 진주시립미술관의 이성자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보존하며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싼 낙찰가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는 스타작가가 탄생하는 데는 작가 자신의 내적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후세의 관심과 노력도 꼭 필요하다. 한국 추상화가 유영국 화백의 작품은 마크 로스코와 비교해 놓고 보아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 내가 마크 로스코를 보기 위해 미국에 갔던 것처럼, 미국 사람들도 유영국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오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라이프치히 미술관은 특별전을 제외한 상설전에 한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었다. 미술관의 외부 위용에 놀랐다가 상설 전시가 무료라는 말에 또 놀랐고, 무료로 공개하는 미술관의 컬렉션이 얼마나 알차고 대단한지 터져나오는 감탄사를 입틀막했다. 눈이 마주친 미술관 경비원에게 "Collection is truly remarkable!" 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유화의 시작 얀 반 에이크,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틴토레토, 플랑드르 바로크의 페테르 파울 루벤스, 네덜란드 바로크의 렘브란트, 바르비종파의 카미유 코로, 테오도르 루소, 장 프랑수아 밀레를 거쳐 프랑스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까지, 흔히 쓰는 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미술관이었다. 이들 작품 하나면 작은 미술관 하나를 세울 수도 있을 정도인데, 어떻게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

▲라이프치히 콜렉션 무료로 운영되는 미술관의 소장품 수준이 어마어마하다.
한성은

▲라이프치히 콜렉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루벤스, 렘브란트, 모네, 밀레의 작품들
한성은
하지만 라이프치히 미술관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올드 마스터의 작품이 아니라, 시립미술관이 가진 배려심이었다. 네덜란드 바로크시기 정물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라헬 라위스(Rachel Ruysch)의 바니타스 정물화 앞에 섰을 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보조도구가 있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미술관들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회화 작품을 감상할 때 사용하는 점자화는 처음 봤다. 회화는 절대적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예술이지만, 이런 도구를 활용해서 대략적이라도 장애인들이 정물화의 윤곽과 질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미술관 미술관의 주요 작품 앞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조도구가 마련되어 있다.
한성은

▲ 점자 안내는 물론이고 촉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한성은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는 정말 값비싸고 화려한 꽃들과 식탁 위의 정경을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하여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네덜란드 정물화를 헛됨, 허무, 덧없음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라고 부르는 이유는 화려한 꽃도 화무십일홍이고, 산해진미를 먹고 금은보화를 가진 사람의 인생도 결국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금욕적인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 같이 잘 살면 좋지 않을까? 조금씩 양보하면 좋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유럽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미술관에서 올드 마스터의 회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내 것'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 진짜 '내 것'이라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내 목숨마저도 결국은 놓고 가야 할 바니타스의 삶이 우리 인생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닌 세상이 오길 바란다.

▲<꽃과 과일이 있는 정물> 라헬 라위스 1707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는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을 상징한다.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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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어른들과 그림을 읽으며 일상을 여행처럼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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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라인업...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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