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다 넘어졌다. 아픔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다가왔다.
남희한(Adobe AI)
으레 그렇듯 이런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는데, 역시나. 10미터 뒤에서 누군가 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지 극심했던 고통이 순식간에 잦아들더니 몸이 알 수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가장 심하게 다친 곳이 손이었는데, 그 손으로 신발에 뭍은 먼지를 털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움을 넘어 기적(?)을 행하고 말았다.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나는 긴장한 상태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신발과 바지를 털었다. '전 괜찮아요. 신발이 피해가 제일 커요~'라고 어필이라도 하는 듯 열심히. 손을 희생해서 구해놨던 얼굴이 염치도 없이 더 화끈거렸다.
목격자가 지나가고 어색함을 수습한 나는 그제야 몸을 제대로 살폈다. 예상대로 피해가 상당했다. 오랜만에 만난 바닥과 '하이파이브' 한 손바닥은 심하게 파이고 쓸렸으며, 무슨 원한이 있는지 바닥과 육탄전을 벌였던 어깨와 무릎은 불에 덴 것 마냥 뜨거웠다. 얼음판에 넘어진 여성이 튀어 오르듯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는 신화를 제법 유사하게 재연했지만, 뿌듯함 대신 찌뿌둥함이 밀려왔다.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아픔을 느끼며 목격자와 거리를 두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 분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난생 처음 런웨이를 걷는 일반인처럼 걸음이 너무 딱딱하게 똑발랐다. 보통 팔을 앞뒤로 흔들지 않나? 주머니에 있지도 않은 손이 몸에 딱 붙어 있었다. 지나치게 앞만 보며 걷는 듯한 모습. 고개도 동작 그만이다. 확신이 섰다. 이 사람 분명 나를 의식하고 있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이 저리도 어색한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가 어느 오피스텔 건물로 빨려들 듯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여전히 남의 시선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어색한 나를 마주했다. 마흔이면 제법 자란 줄 알았는데, 아직 다 크지 못했구나. 넘어질 때 흙이 들어갔는지 입이 좀 텁텁했다.
지나치는 편의점의 유리로 내 모습이 비췄다. 온 몸에 먼지를 묻히고 서있는 꼴이 제법 사나웠다. 멀쩡한 척했던, 누가 봐도 멀쩡하지 않은 내가 거기 있었다. 실소가 새어 나왔다. 늦은 밤 인적 드문 거리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편의점을 보며 썩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남자. 혹시 누군가 위협을 느꼈다면,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이젠 초연해진 줄 알았는데
남을 신경 쓰는 삶에서, 그러니까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은 초연해진 줄 알았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나는 제대로 남 앞에 내던져져 본 적이 없었던 거였다. 극한의 상황에서 본연의 모습이 드러났고 부정하고 싶은 그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초연하기엔 본연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다.
옷에 묻은 먼지를 발견하자 아픈 손이 올라왔다. 아, 여전히 배우지 못한다. 가슴까지 올라온 찢어지고 피로 얼룩진 불쌍한 손. 그 손을 잠시 바라보다 먼지를 묻힌 채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입가에 맴돌던 실소가 자꾸만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즐겁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즐거워진다고 했던가. 실소는 실실거림을 지나 어이없게도 웃음으로 번졌고 왠지 모르게 시원해졌다.
바닥을 구르며 내 속의 저 밑바닥까지 다녀와서인지 일말의 홀가분함을 느꼈다. 착각이란 병을 팩트라는 유일한 진단방법으로 확인하곤 그만 마음이 편해졌다. 긍정이란 것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인간이 될 줄은 몰랐다. 본의 아니게 '초연'에 대해 초연해진 느낌. 그러니까 조금 겸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