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2072년 장래인구추계통계청 (2023.12)
통계청
2072년은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학생(2007년생)이 65세에 도달하는 해다. 이들은 자신들의 노후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태어난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많은 노인을 부양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려 할까. 그런 세상을 물려준 선배 세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게 될까.
당장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50년 후는 너무 먼 미래다. 지금 이 기사를 읽는 장년층 가운데 2072년에 생존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건 말건, 나라가 망가지건 말건, 죽기 전까지 혹은 죽은 후에도 나와 내 가족이 잘 살면 그만이다. 출산율이 낮아진 건 내 탓이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따로 있다.
정치가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 미래를 예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밀알이 되고자 하는 '참' 정치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이 난국을 해결할 국가 차원의 대개혁을 주창하는 이가 없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탁자를 정리하는 오류를 범하면서도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렇다고 당신과 나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해 사회와 공동체를 팽개치고 살아온 무책임. 눈먼 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나 몰라라 하며 지낸 죄가 무겁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새천년이 시작된 첫 오십 년을 가리켜 '무능의 시대'였다는 꼬리표를 붙여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의 유효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지금은 '탈성장의 시대'다. 성장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쉽사리 해법을 찾기 힘든 고차함수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우리가 살아갈 날은 살아온 날보다 힘겨울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생애주기도 바뀌고 있다. 인생 곡선이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쌍봉낙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정년과 은퇴 후에도 살아갈 날이 길게 남아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자.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공익을 위해 일하는 단체를 돕고, 미래를 밝힐 지도자에게 표를 주자. 다음 세대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매킨타이어(A.Maclntyre)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지를 아는 것. 이 서사적 탐색이 우리의 남은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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