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간첩으로 몰린 유우성씨와 압박으로 오빠가 간첩이란 거짓 증언에 이른 동생 유가려씨의 모습.
뉴스타파
역사는 진보하는가, 반복되는가
1894년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은 당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권력의 오작동과 맞물려 어떻게 정의를 훼손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로부터 100년도 더 흐른 한국에서 이번엔 북한에서 살았던 화교 출신 중국 국적 공무원이 간첩으로 조작되는 일이 발생했다. 과거 프랑스 군부가 진실을 알고도 덮었듯, 또 적극적으로 진실을 은폐해나갔듯이, 한국의 국가기관들이 증거를 조작해 무고한 이를 감옥에 넣으려고 시도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책은 드레퓌스 사건으로부터 1차대전 발발의 계기가 된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혁명, 대공황, 대장정, 히틀러, 팔레스타인,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 맬컴 엑스, 핵무기 개발,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등을 차례로 서술한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차별의 대상이었고 인종학살의 피해자였던 유태인들이 가해자가 되어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는 이야기, 또 그를 해소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노력이 언급되기도 한다.
어느 시선에서 보면 역사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드레퓌스 사건이 있었으나 다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있고, 홀로코스트 뒤 가자지구에서의 참담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역사는 좁은 보폭으로라도 진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믿음을 품게도 된다. 책은 호찌민과 무하마드 알리, 오펜하이머, 고르바초프와 같은 이를 등장시켜 이들이 다른 이와 달리 내린 선택을, 또 그 선택이 이룬 변화를 서술한다. 그로부터 독자는 그들이 없었다면 있었을 역사의 진행방향 한편으로, 그들이 있어 이뤄진 커다란 변화의 지점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좀처럼 엮이지 않을 것 같던 커다란 사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엮여 움직이는 과정은 인류역사가 어느 하나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단 인식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오늘의 사건이 내일을 이루는 바탕이 되어 오늘을 함부로 보내지 못하도록 이끈다는 뜻이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엿보이는 유태인에 대한 혐오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가 유태인이 시온주의 아래 결집하는 배경이 되고, 이는 다시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중동의 불안으로, 또 첨단무기의 발달과 주력 에너지의 변화로 연결되니 역사가 고립된 개별 사건이 아닌 변화하는 흐름으로 존재함을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