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제주도의 역사

'알뜨르 비행장' 다크투어에 나서다

등록 2024.08.01 13:14수정 2024.08.0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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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한창 시작된 7월이었건만 필자는 졸업이 요원한 학점을 어떻게든 끌어올 겸 겸사겸사 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제주대에서 계절학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제주대에서의 종강을 맞이한 이후, 제주도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휴일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이곳 '알뜨르 비행장'에 들르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명색이 일본학 전공이었던 터라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제주도에 지었다는 비행장을 알아보러 가고 싶었을 뿐 그곳에 담긴 어두운 내면을 알아본다던가의 다른 특별한 동기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제주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필자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a  알뜨르 비행장에 들어선 첫 모습

알뜨르 비행장에 들어선 첫 모습 ⓒ 전영우

 
이날은 제주도에 머무르기 시작한 이래 구름이 잔뜩 끼어 우중충했던 종전과 달리 쾌청한 푸른 하늘에 포근한 느낌의 흰색 구름들이 보기 좋게 수놓아진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특별했던 오늘, 마치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수고했던 필자를 위로하여 주고 제주도에서 보내는 마지막을 보기 좋게 장식해 주는 듯하였다.


하지만 학교 기숙사에서 알뜨르 비행장까지 직통으로 가는 교통편이 없었다. 환승을 거쳐 도보로 40분 이상 걸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화창한 날씨는 역으로 뜨거운 햇빛을 선사하며 걸어가는 필자의 전신을 땀으로 흠뻑 적셔주었다.

마침내 도착한 비행장 입구에서 필자는 잠시 쉬어갈 겸 인근 벤치에 몸을 의지한 채 비행장 전경을 바라보았다. 과거 비행장으로 사용했던 시절에 걸맞게 광활한 평지와 여러 부대 시설, 그리고 작게 솟아난 몇몇 개의 언덕들이 눈에 보였다.
 
a  알뜨르 비행장 앞 안내표지판들

알뜨르 비행장 앞 안내표지판들 ⓒ 전영우


이곳에 설치된 안내표지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은 1930년대에 건설된 이래 중일전쟁에서 대륙 폭격을 위한 전투기들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했으며 태평양전쟁이 개전한 이후 1943년 제주도민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격납고 등의 부대 시설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에 만들어진 20기의 격납고 중 지금은 19기가 남아있다는데 이런 사실을 곱씹으며 격납고와 지하 시설, 그리고 관제탑으로 사용되었던 콘크리트 구조물까지 비행장 주변의 이곳저곳을 활보하였다. 시간은 충분했기에 근 100년 전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며 이곳을 여유롭게 거닐어 보았다.
 
a  다크 투어리즘 코스 안내표지판

다크 투어리즘 코스 안내표지판 ⓒ 전영우

 
사실 여기까지는 그렇게 마음속에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었기에 다시 돌아가려고 주차장 쪽으로 돌아온 그때, 이전에 못 봤던 하나의 표지판이 내 눈에 띄었다. 보아하니, 사실 이곳은 제주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코스 중 하나였던 듯하다. 표지판에 나온 코스를 따라가 보던 중 우연히 내 눈앞에 어떤 비석이 있는 것 같아 얼른 그쪽으로 이동하였다.
 
a  백조일손(百祖一孫) 영령 희생터

백조일손(百祖一孫) 영령 희생터 ⓒ 전영우

 
가까이 가보니 제주 4·3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을 세운 것 같았다. 이를 둘러보던 중 갑자기 필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필자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제주 4·3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중 한 분이었다. 그는 여기에 남아 관광객들에게 당시 이곳 비행장에서 벌어진 참상을 소개해 주고 계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탄약고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독립 이후 우리 국군이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학살하여 여기에 매장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설명을 듣고 둘러보니 그동안 잔잔하게 느껴졌던 이곳이 뭔가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녹음방초(綠陰芳草)가 짙게 드리우고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 풍기는 이곳에서 시체를 매장했을 구덩이 2개와 더불어 진혼비(鎭魂碑), 그리고 조기(弔旗)만이 여기서 일어난 당시의 참상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a  고사포 진지

고사포 진지 ⓒ 전영우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앞에 펼쳐진 길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잠시 오름길을 올라가 보니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고사포 진지가 눈에 띄었고 계속 나아간 그 속에서는 송악산이 있었다.


표지판에 따르면 제주도는 본디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최후의 발악으로 구상한 "결호작전(決號作戰)"에 따른 작전 지역 중 하나였다. 이곳에 상륙하는 연합군과 맞서 싸우기 위하여 송악산에 여러 진지 동굴을 구축하였다는 듯하다.
 
a  동굴진지

동굴진지 ⓒ 전영우

 
실제로도 이곳을 올라가면서 여러 개의 동굴을 마주할 수 있었고 이것은 산 한가운데뿐만 아니라 인근 해안가의 절벽에까지 진지동굴을 구축하였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부터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 통치하게 된 이후 민족의 정기를 멸하기 위하여 산 이곳저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나온다. 이것의 진위는 불명이지만,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곳 제주도에서 벌인 일본의 만행은 그것의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느꼈다.


그 이유에는 당시 이 진지가 구축되어 가는 시대적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제해권과 제공권을 연합국에 완전히 넘겨주며 사실상 그 국운이 다하게 될 운명을 맞았다. 하지만 일본 군부는 본인들의 패배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식민지는 물론 본토 자국민까지 모두 동원하여 항전하겠다는 "일억총옥쇄"를 부르짖으며 전쟁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을 천명하였다. 결호 작전 역시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충승(沖繩)에서 벌어진 격전의 장에서 당시 살아가던 주민들의 비극적인 참상들을 보고 나면 만일 연합국이 제주도에 상륙하기 시작하면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자명하다. 다시 말해, 일본은 자국 군부의 생명을 어떻게든 연장하기 위하여 다른 무고한 민족들까지 전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민족의 정기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쇠말뚝 사건보다 우리의 실체적인 존재를 없애려 한 것이기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우리 민족이 전쟁의 참상을 겪기 전에 일본이 미리 항복을 결정한 점은 매우 다행이라 생각한다.
 
a  송악산 인근의 해안가 풍경

송악산 인근의 해안가 풍경 ⓒ 전영우

 
알뜨르 비행장에서부터 송악산 해안의 일제 동굴 진지까지를 끝으로 다크 투어리즘의 코스는 모두 끝이 났다. 적잖은 시간 동안 걷고 등산하여 땀이 온몸을 적시고 매우 지쳐 갔지만 이곳에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은 잊히지 않았다.

만일 제주도에서 머무는 이 마지막 휴일을 이곳이 아닌 다른 평범한 관광지로 갔다면 오늘 느낀 이 무거운 깨달음은 평생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이곳을 고르게 된 것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제주도민들의 심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민족주의의 기치를 논외로 하더라도 이들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제로부터 여러 수탈을 겪어야만 했었고 광복으로 이 같은 고생도 끝이라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휘말려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점은 한국과 일본 모두 어디가 악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정도다.

그동안 우리가 일본에 부정적인 감정을 품은 이유는 대체로 일본 그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해온 그간의 만행으로 길러진 비판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었다. 여사한 맥락에서 한국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주도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길이길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며 이상의 글을 마친다.
#제주도 #다크투어리즘 #알뜨르비행장 #송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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