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전통 활(각궁)을 쏘는 궁사의 모습 (2024.7.31 / 서울 공항정)
김경준
사실 활쏘기 피서법은 내가 처음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 역시 피서법으로 활쏘기를 소개했다. 한여름 더위를 이기는 8가지 방법을 정리한 <소서팔사>(消暑八事)에서 '송단호시(松壇弧矢: 솔밭에서 활쏘기)'를 첫 번째로 꼽은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더운 여름에 활쏘기가 무슨 피서법이 될 수 있냐고 의문을 품었더랬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철 직접 활을 쏴보니 정약용 선생이 왜 활쏘기를 피서법으로 추천했는지 금세 수긍할 수 있었다.
여름철이 오히려 활 쏘기 좋은 이유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게 활쏘기이지만, 오히려 겨울보다는 차라리 여름이 활쏘기를 즐기기에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겨울철에는 손이 얼기 때문에 활 시위를 당기기 쉽지 않다. 연신 히터와 손난로로 손을 녹여가며 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 전통활쏘기는 시위를 당기는 손에 '깍지'라는 보조도구를 착용해야 하는데, 춥다고 장갑을 끼면 깍지를 착용하는 데 애로 사항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땅이 얼기 때문에 쏘아 보낸 화살이 언 땅에 맞고 부러지기 쉽다는 취약점이 있다.
그에 비하면 여름철은 더운 것만 빼면 딱히 활을 쏘는 데 지장이 없다. 과거 태조 이성계는 요동 정벌이 불가능한 까닭을 정리한 '사불가론(四不可論)'의 하나로 "덥고 습하며 비가 내리는 여름 장마철에는 활의 아교가 풀어져 전쟁이 불가하다"고 강변했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이는 전통 활인 각궁의 재료로 아교(동물의 가죽·힘줄·창자·뼈 등을 원료로 한 풀)와 어교(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 등이 쓰인 까닭인데, 요즘은 활터마다 '점화장'이라고 하여 온도와 습도를 적절히 유지해주는 기구들이 갖춰져 있어서 평소 보관만 잘해주면 한여름에도 실컷 활을 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활터에 현대식 카본 활(개량궁)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딱히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이기도 하다.
오히려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하루 종일 쐬다 보면 '냉방병'에 걸리기 쉬운데, 이를 예방하기에 활쏘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는 것 같다.
특히나 내가 다니는 활터는 산 속에 조성돼 있어, 화살을 주우러 가는 길(연전길)이 숲길로 조성돼 있다. 나무 사이로 걷다 보면 체내에 축적된 에어컨 바람의 독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