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지리지 상에 인삼이 기재된 지역 . 백제 무령왕 당시 백제 영역에 속했던 지역 중 당시 백제의 수도와 인접한 충남 세종 지역만을 놓고 봐도 인삼 자생지는 지금의 논산시 은진면과 연산면, 계룡시, 예산군, 보령시, 예산군 대흥면, 아산시, 세종시 전의면, 세종시 전동면, 천안시, 공주시 등 충남 지역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출처 논문(세종실록을 통해 본 고려인삼, 2021,주승재)
세종실록을 통해 본 고려인삼, 2021,주승재
석막리(월명동)가 '백제금산인삼의 종주지'로 불릴만 한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월명동 종주지 설'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최태호 교수는 <삼국사기>에 '백제 무령왕때 중국 양나라에 인삼을 예물로 보냈다'는 기록과 당시 백제의 수도가 부여(무령왕 당시 백제의 수도는 부여가 아닌 공주였다)에서 50km 정도에 위치해 거리가 가까운 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른 백제 지역에서 인삼이 났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양나라에 선물로 보낸 것이 진산에서 난 인삼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의 주장처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언급된 인삼 산지 '월외리'가 지금의 석막리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삼국사기> 무령왕을 엮어 '월명동이 종주지'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중종 26년(1530)에 간행한 것으로 조선 성종 때 발간한 <동국여지승람>의 증보판이다. 최 교수는 1530년 기록을 근거로 당시로부터 1000년 이상을 뛰어넘은 백제 무령왕 때 인삼 생산지를 지금의 석막리(월명동)로 본 것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지금의 충북 증평군 등도 인삼이 나오는 곳으로 기재돼 있다). 게다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당시 전국 모든 지역을 망라한 것이 아니었다.
반면, <신증동국여지승람>보다 76년 앞선 <세종실록>(1454년 편찬)에 수록된 고려인삼 자생지는 전국 113개 지역으로 도서지방을 제외한 조선 8도 전역에 걸쳐 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재위 기간(1418~1450) 동안 인삼을 중국에 진헌품으로 보낸 횟수만 101회, 규모는 1만1000근(7060kg)에 이른다(2021년 세종실록을 통해 본 고려인삼, 주승재 서울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