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마을험준한 산들이 이룬 작은 분지에 앉은 피노마을. 사진 중간 나무 뒤가 전봉준 피체지로 알려진 자리다.
이영천
피노리 가는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살면서 누구나 몇 번의 죽음을 마주한다. 부모나 가족의 죽음은 평생 뇌리에 남는다. 나와 무관한 죽음을 새긴다는 건 그래서 무척 예외일 수밖에 없다. 영향을 크게 받았거나,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게는 전봉준이 그러했다.
숨 죽이며 살피는 일본군 동정
전라남북도를 경계 짓는 노령의 몸피는 굵고 억세다. 서남으로 뻗어오던 산맥이 마지막 힘을 다해 웅장한 산들을 잇달아 세우곤, 서해로 머리를 풀어 사그라든다. 방장산과 입암산, 백암산, 내장산이 늘어선 산세는 그래서 험준하다.
이곳을 넘는 갈재도 구절양장이다. 남도에서 전주, 한양으로 가는 이 고개 동북쪽에, 험한 산세에 의탁한 입암산성이 앉아 있다. 백양사와 순창으로 가려면 반드시 입암산성을 지나야 한다.
갈재를 넘은 전봉준 일행이 암암리 도움을 준 입암산성 별장 이종록을 찾아간다. 벗이지만 그는 관리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전봉준 일행을 환대한다. 그의 인품이 치열한 전쟁과 허리를 휘감는 눈길의 피로를 녹여준다. 따스한 구들장은 내 집 같다. 여기서 일본군의 동정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