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 3.1운동 순국23위의 묘. 제암리 사건이 벌어진 제암리 교회 터에는 3.1운동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탑 뒤편 중턱에 순국23위의 합동 묘를 조성하는 등 일대는 제암리3.1운동 순국유적지로 조성되었다.
임재근
수원 지역 3.1운동은 기독교와 천주교가 주축이 되어 일어났고, 종교인뿐아니라 학생, 상인, 기생 등 다양한 계층이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관공서를 파괴하는 등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저항도 강하게 표출되었습니다. 특히 일제가 제암리 사건의 빌미로 삼았던 발안장(향남면 발안리) 만세운동은 일본의 만행에 분개해 방화를 포함해 격렬하게 전개된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결혼식날 일가족 학살... 시체 수습도 막아
일본군은 제암리에서 위와 같은 방화, 학살을 저지른 것에 그치지 않고, 바로 옆 마을 고주리로 이동해 김주업의 결혼식을 위해 모였던 김흥열(김흥렬)의 일가족 6명을 칼로 죽이고 시체를 불태우는 만행을 이어갔습니다. 잔혹하게 학살 당한 6명의 시신 상태는 너무도 처참해서 누구의 유해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학살 사건 이후에도 일본군은 매일 고주리에 들러 시체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3일 후에서야 시체를 묻으라고 해, 마을 사람들이 시체를 수습해 분묘를 만들었는데 3기 밖에 조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희생된 이는 김흥열을 비롯해 동생 김성열, 김세열, 그리고 조카 김흥복(김성열의 아들), 김주남(김세열의 아들), 김주업(김세열의 아들)이었고, 모두 천도교인이었습니다. 이중 김흥열과 김성열 형제는 수원 발안장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었습니다. 정부는 순국한 김씨 일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1년 이들을 모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했고, 유족과 천도교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매년 4월 15일에 추모제를 거행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