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베이' 홈페이지 캡쳐. 해당 기업의 핵심 가치 중 '직원에 대한 충성'과 '윤리 경영' 이라는 항목이 있다. (https://www.sushibay.com.au/)
스시 베이 홈페이지
이번에 피해자는 대부분 워킹홀리데이를 왔거나 학생 비자 소지자인 한국 청년들로 밝혀졌다. 비자 문제, 언어 장벽 및 호주 근로법에 대해 잘 모른다는 약점을 미끼 삼아 젊은 청년들을 착취한 것이다.
실제 호주 공정 근로 옴부즈만은 2016년에도 호주 한국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호주의 근로 법률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동참해 달라는 서신을 보낸 적이 있다. 호주 정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호주 이민자 중 6명 중 1명이 최저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할 정도로, 호주 내 이주민 임금 착취는 만연한 문제다.
당시 옴부즈만이 직접 나서서 한인 기업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조사하고 서신을 보냈다는 것, 더불어 이런 한인 사회 내 임금 착취 문제가 올해까지 수년 간 반복되고 있다는 데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상 최고 벌금을 징수 받은 한인 기업... 개선되지 않는 임금 착취
호주에 한국인이 가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은 흔히 두 종류로 나뉜다. 소위 '한인 잡'(직업을 뜻하는 영어 Job)과 '오지 잡'(Aussie Job, Aussie는 호주 사람들을 뜻하는 영어 속어)이다. 한인 잡은 한인 동포가 운영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고, 오지 잡은 호주인이 고용주인 곳에서 일하는 것이다.
한인 잡은 대부분 한국인 고용주와 직원들과 일하기에 영어를 잘 못해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호주 근로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급이 호주 최저 시급보다 낮거나 주말, 공휴일 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고 주급을 현금으로 받는 '캐시 잡'이 많아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정부 보호를 받기가 어렵다.
한편, 오지 잡은 호주인 고용주가 호주 근로법을 준수하며 운영하는 곳에서 하는 일이다. 주급을 현금으로 받더라도 최저 임금 보장은 물론, 근로 형태에 따라 퇴직 연금, 주말 및 공휴일 수당 등 정당한 노동자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어떤 고용주 밑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노동에 대한 대가가 다르니, 호주 한인 청년들에게는 오지 잡 구하기가 목표다.
공식 기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6년에도 호주 공정 근로 옴부즈만은 한인 커뮤니티 내 지속적인 임금 체불과 관련해 한인 고용주와 직원을 인터뷰했었다. 그런데 이에 따르면 한인 고용주들은 호주 정부의 근로 규정을 먼저 확인하기보다, 호주 내 한국 커뮤니티에 의존하여 "통상적인 임금"을 설정했다고 한다. 물론 그 "통상적인 임금"은 호주 최저 시급보다 적었다.
시드니의 한 한국 식당 운영자는 최저 임금에 맞춰 제안할 경우 한인 자영업 사회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할까 봐, 최저 임금의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급 12달러에 직원 모집 광고를 냈다고 말했다. 2016년 당시 최저 임금은 $17.70, 한화로 치면 약 1만 6천원 정도였다.
한인 고용주들은 한인 청년들이 영어도 못하고 경험도 없다는 것을 저임금의 이유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시드니의 한 한인 유학생(익명 요청)은 지금도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호주에 오자마자 공부도 하고 돈도 벌면서 적응도 해야 했기에, 우선 말이 잘 통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한인 잡을 하게 됐어요. 저는 평일엔 최저 임금을 받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주말 근무 수당으로 받지 못해요.
그래도 다른 한인 잡에 비해 잘 받는 편이에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돈은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캐시 잡이어도 소득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미 최저 임금보다 낮게 받으니 굳이 신고 안 해요."
그런데 이는 청년들이 호주에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인터뷰에 응한 유학생은 최근 집을 구할 때 엄청 애를 먹었다고 덧붙였다.
"호주에선 집 구할 때 소득을 증명해야 하는데, 정부에 보고하는 소득이 없으니 제 소득은 0이거든요. 결국 한국에 계신 부모님 소득과 가족 관계까지 증명해야 했어요. "
뒤처진 한국의 노동 인식
여전히 많은 한국인 청년들이 언어 장벽과 호주 사회와 제도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임금 착취를 당하거나, 착취를 당하고도 자신의 잃어버린 권리에 대해 어쩔 수 없다며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스시 베이 판결도 피해자로 추정되는 163명 중 용기 있는 단 2명의 신고 덕분에 이뤄진 일이었다. 유독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불합리한 행태가 문화적으로 자리 잡은 건 왜일까?
개인적으로는 수직적인 한국의 위계질서와 더불어, 시키는 대로 하는 주입식 교육과, 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뒤처진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스웨덴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올초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일화가 생각난다. 이 또한 한국 사회의 뒤처진 노동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 지인은 한국 대기업 현지 법인에서 일하는데, 이곳 기업이 스웨덴에서도 한국에서 하던 대로 한국식 강제 야근 문화를 강행했단다. 그런데 여기에 지친 스웨덴 직원이 한국인 상사에게 직접 따졌다는 것이다. 그는 당당하게 '회사가 자신을 착취하고 있으며, 스웨덴에서 이는 용인되지 않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그로 인해 갈등이 불거졌다고 한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이런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