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재 주련에는 덕산복거(德山卜居 덕산에 터를 잡고) 시 한 수가 적혀 있고 편액 뒤에는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선생의 ‘천석종(千石鐘)’ 시 한 편이 걸렸다.
김종신
남명은 지리산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산천재(山天齋)란 당호를 붙였다.
<주역(周易)>의 '강건존이(剛健尊矣) 휘광일신(輝光日新)'에서 취하였다. 산(山)과 천(天)이 하나로 합한 것으로, 강건하고 독실하고 휘광하여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창의 벽에는 '경·의' 두 글자를, 다른 쪽에는 '신명사도명(神明舍圖銘)'을 써 붙였다. 마음의 공부를 국가 관제에 비견하여 지은 것이다. 그는 또 덕산 시냇가 상정이라는 정자에 '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라는 시를 지어 걸었다.
청컨대, 천 석 들이 종을 보시게
북채 크지 않으면 쳐도 소리 없다네
나도 어찌하면 저 두류산처럼 될까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고 서 있는.
이 시는 남명이 거대한 천석종 같은 정신세계를 꿈꾼 것이다. 그 종은 큰 북채로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대한 울림을 갖는 종이다. 에밀레종이 경주 서라벌에 울렸다면, 이 종은 조선 팔도에 울리고도 남을 종이다. 바로 남명이 추구하는 정신이다. 그는 그 종을 쳐서 온 나라에 울려 고통에 시달리는 민생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천석종은 머리 속에 상상하는 종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 있는 천왕봉이었다. 하늘에 매달려 있는 천왕봉이 바로 그의 눈에 천석종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머리 속에 있던 천석종은 천왕봉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거대한 천왕봉 같은 천석종이 되고 싶었다. (주석 1)
남명은 지리산에 살면서 틈이 나면 천왕봉을 올랐다. 혼자일 때도, 제자들과 함께할 때도 있었다. 어느날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올라가는데 바위에 이름을 새겨 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같은 악습은 최근까지도 이어진다.
중간에 큰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이언경(李彦憬)·홍연(洪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오암(捂巖)에도 시은형제(柿隱兄弟)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썩지 않는 돌에 이름을 새겨 억만 년토록 전하려 한 것이리라.
대장부의 이름은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사관(史官)이 책에 기록해 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러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와 너구리가 사는 숲 속 덤불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까마득히 잊혀질 것이니, 후세 사람들이 날아가 버린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찌 알겠는가? 두예(杜預)의 이름이 전하는 것은 비석을 물 속에 가라 앉혀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석 2)
남명은 허명을 지극히 배척하였다. 실용성 없는 허례허식을 배척한 것이다. 명산의 바위에 버젓이 이름을 새겨놓은 사람들을 향해 매섭게 질타했다.
날아가는 새도 지나가면 흔적조차 없는데, 그 그림자야 말해 무엇하랴.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 가지도 하지 않고서 돌에다 이름이나 새겨 남기려 하는 짓은, 새의 그림자나 구름의 그림자처럼 흔적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산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다 자기의 이름을 남겨놓았던가. 남명의 이 말씀은 천고에 길이 남을 모골에 송연해지는 법이다. (주석 3)
그는 지리산을 좋아하고 10여 년 이곳에서 생활화하면서 천왕봉을 주제로 몇 편의 시를 지었다. 그 중의 <우음(偶吟)>이다.
큰 기둥 같은 높은 산이
한 쪽 하늘을 지탱하고 있네
잠시도 내려놓은 적 없지만
또한 자연스럽지 않음이 없네. (주석 4)
주석
1> 앞의 책, 71~72쪽.
2> <남명집>.
3> 최석기, 앞의 책, 83~84쪽.
4> 앞의 책,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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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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