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6월 1일 봉숭아 꽃씨를 심다. 싹이 올라오고 봉황을 닮았다는 꽃이 폈다. 봉숭아 꽃을 따는 꽃보다 예쁜 딸. 꽃물들이기 준비물로 명반과 절구방망이를 준비했다.
원미영
6월 초, 보드라운 흙에 아이와 봉숭아 씨앗을 심었다. 눈빛이 변하고 부쩍 짜증을 내는 사춘기 아들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 담벼락 아래에 코스모스와 채송화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는 일이었다. 세상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입이 나온 아들은 그래도 충실히 물을 주고, 뙤약볕에 씨앗이 제대로 발아할지 걱정했다.
마침내 흙 속에서 빼꼼히 연둣빛 싹이 올라왔다. 떡잎이 나고 본잎이 났다. 가느다란 줄기가 굵어지고 뾰족한 잎들이 자라나는 시간을 우리는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봤다. 불볕더위와 장마를 이겨낸 8월, 드디어 바라고 바랐던 꽃이 달렸다. 꽃이 떨어진 자리엔 손대면 톡 터질 것 같은 씨앗이 달렸다.
빨간색, 자주색, 짙은 분홍색, 연한 분홍색, 흰색까지 다양한 색의 꽃이 달렸다. 봉선화 씨앗과 함께 사 온 채송화는 불량이었는지 싹이 나지 않았고, 코스모스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새 코스모스는 키가 내 허리까지 왔다. 집을 나설 때마다 담벼락 아래에서 하늘거리는 바람개비 같은 꽃이 말을 거는 듯했다.
뜨거운 여름도 이제 끝이니 조금만 참으라고.
곧 가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