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온와이 로컬카페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경신원
헤이-온-와이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다.
많은 서점과 상점들은 온라인 판매를 강화하고, 소셜 미디어와 웹사이트를 통해 고객과의 소통을 유지했다. 이러한 변화는 팬데믹 이후에도 지속되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판매가 상호 보완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다양한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 팬데믹 기간 서로 돕고 지원하면서 공동체의 유대감을 유지함으로써 지역 커뮤니티를 강화할 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대규모 행사가 중단되면서, 2020년 헤이 페스티벌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처음 시도되는 디지털 축제에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하면서 헤이 페스티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팬데믹 이후에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로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온라인 참여자들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헤이-온-와이는 팬데믹 초기에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 지역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국내 관광객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조금씩 회복되었다. 헤이-온-와이가 갖고 있는 문화적 매력뿐만 아니라 주변 웨일즈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적 매력을 즐기고 자전거 타기, 하이킹 등의 야외 활동을 하기 위해 도시를 찾고 있다.
작은 농촌마을에서 국제적인 서점마을로
헤이-온-와이는 195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인구가 감소하고 빈 점포와 빈 건물이 증가하는 침체되는 작은 농촌 마을에 불과했다. 마을에는 중세 시대에 건설된 성과 교회 같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있었지만, 외부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부족해 관광객이나 외부 방문객도 많지 않았다. 오늘날 '지역소멸'의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지방 중소도시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쇠퇴 위기의 작은 농촌 마을은 리처드 부스(Richard Booth)라는 괴짜천재 청년에 의해서 변화되기 시작했다. 1961년, 당시 26살이었던 리차드 부스는 고향인 헤이-온-와이로 돌아와 첫번째 서점을 열었다. 요즘 로컬분야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고향으로 U턴을 한, 유턴자인 셈이다. 많은 건물들이 비어 있었고, 임대료가 저렴했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빈 건물들을 하나씩 서점으로 바꾸면서 '서점마을'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도 그가 제시한 '서점마을'이라는 비전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그는 지역 주민들과의 협력을 통해 서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점 사업으로 큰 경제적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서점과 책을 테마로 한 마을이 관광지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았다. 중고서점과 희귀본 서점을 통해 전국과 해외에서 책 애호가들을 유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농촌마을에서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보았고, 문화적, 사회적 변화의 중심에 서서 마을 전체를 하나의 큰 문화적 허브로 변모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작은 농촌마을이었던 헤이-온-와이를 국제적인 '서점마을'로 만들기 위해 리차드 부스가 시도한 전략을 살펴보자.
첫째, 서점 네트워크 형성이다. 그는 마을 내에 여러 개의 중고서점을 열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희귀본과 다양한 책을 취급하여 지역의 독창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했다.
둘째, 다양한 문화행사의 개최다. 서점에서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문화 행사와 작가 초청 강연을 열어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교류하고 문화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셋째, 헤이 페스티벌의 창설이다. 1988년, 리차드 부스는 지역 차원의 페스티벌을 창설함으로써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지역으로 초청하고, 강연과 토론의 장을 열어 마을을 국제적인 문학 축제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리차드 부스는 헤이-온-와이를 문화적으로 독립적인 장소로 만들고자 했으며, 마을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독창적인 마케팅 전략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헤이-온-와이는 문화 관광지로 성장했고, 책과 관련된 여러 행사가 개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