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외관
김아영
그날 밤, 뒤가 개운치 않았던 나는 앱으로 카드 결제 내역을 찾아보았다. 역시나 편의점에서 쓴 내역이 없었다. 솔직히, 갈등했다.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됐다고 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 순간 오래 전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은 비닐봉지 값을 치르는 게 당연한 일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뭘 그런 걸 돈을 받느냐고 성질을 부리는 손님이 흔했다. 그런 손님을 볼 때마다 봉지 값으로 쩨쩨하게 20원이 아니라 2,000원 정도 받았으면 했다.
십 원짜리 잔돈 받기 싫다는 핑계가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비닐봉지가 썪으려면 한오백 년 걸린다는데 겨우 오 분 남짓 편하자고 20원도 내지 않고 비닐을 달라고 우기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매일같이 보며 환경 문제가 괜히 심각해진 게 아니구나 하는 경각심이 들었다.
비닐봉지 값은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 정부에서 정한 거라고, 그냥 주면 신고 당한다고 설명하는 게 지겨워지던 어느 날,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외국인 세 명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내가 "어서 오세요."하고 맞이하자 그들은 어색한 미소로 응답하며 얼른 매대로 향했다. 앳된 얼굴로 봐선 10대 후반쯤 된 것 같았다. 관광객인지 아님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이민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기들끼리 모국어를 쓰며 열심히 간식을 고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잠시 뒤 그들은 쭈뼛대며 상품을 계산대로 가져왔다. 가짓수가 꽤 많아서 "봉지 드릴까요?" 하고 물었는데 멋쩍게 웃으며 내 눈치만 봤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상품만 결제하고 카드를 돌려줬는데 갈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 한 명이 휴대전화를 꺼내 번역기에 뭔가를 입력했다. 그리고 긴장한 얼굴로 내게 화면을 보여줬다. 태국어 문장 밑엔 한국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닐 가방에 담아주세요.'
나는 웃으면서 비닐봉지 한 장을 꺼냈다. 그들은 뜻이 통한 게 뿌듯했는지 처음으로 밝게 웃었다.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펴서 "트웬티 원"이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영어,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열심히 설명하다가 돈통에서 이십 원을 꺼내 직접 보여주었다.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자기들끼리 상의까지 했지만 봉지를 돈 주고 산다는 걸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자 나는 얼른 봉지에 상품을 담아 웃는 낯으로 건넸다. 그제야 그들은 미소를 되찾았고 나에게 어설픈 목인사를 건네며 돌아갔다.
나는 자투리 동전을 모아둔 통에서 이십 원을 꺼내 봉지 값을 결제하고,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에 한참 눈길을 주었다. 낯선 곳에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풋풋함과 설렘을 보고 나니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사람에게 편의점은 너무도 익숙한 공간이지만 저들에게는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편의점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뭔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미리 알아봤을 지도 모른다. 내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던 그들을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