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mwrm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간 사진.
wrm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9호, 0호부터 시작했으니 10번째 권인 이 잡지가 주로 다루는 주제가 바로 wrm의 영업종료에 대한 것이다. 잡지 가운데 이 공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 종료를 애도하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글 한 편씩을 써 보내었다. 나는 만들어진지도, 또 사라진지도 알지 못했던 wrm을 그 애도로써 만나게 된 셈이다.
낯선 이의 장례식에 초대된 불청객의 마음으로 나는 이 잡지를 읽어나간다. 내가 한 달 에도 몇 번씩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라 불리는 너른 터전에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공간이고 브랜드였던 무엇이 있었음을 뒤늦게 아는 과정이 민망하다. 내가 사는 서울시 양천구에서 매일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텐데, 그들에게 하나하나 사연과 열망과 분노하는 화젯거리가 있었을 것이란 걸 나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꼭 그와 같은 기분으로, 누구에게는 적잖이 따스하고 탁월하며 친근했던 공간이 어떠한 모양이었을지를 나는 더듬어나간다.
wrm으로부터 활동지원금을 받아 작품을 내놓았던 이들이 있다.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 중 하나는 제가 제법 성장했음을 문득 인식한다. 또 다른 이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독촉 한 번 하지 않은 wrm 운영진으로부터 다른 무엇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떠올린다.
약간의 짜증 섞인 글을 쓰는 이가 있고, 든든한 아지트를 잃었다며 아쉬워하는 사람, 가만히 그리워하며 옛 모습을 떠올리는 이가 있다. 그들의 글로부터 나는 내가 가본 적 없는 wrm을 그려본다. 내 곁엔 그와 같이 소중한 무엇이 있는가도.
세상 모든 게 사라진다지만 어느 사라짐은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그저 별이 나의 별이 되었을 때, 세상 흔한 공간이 내가 아끼는 공간이 되었을 때, 영희철수가 내 벗이 되었을 때가 그렇다. wrm을 애도하는 잡지의 표지에 '벌써, 안녕, 나의······'란 말을 반복해 적은 건 그 이별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이요, 그럼에도 떠난 것과 남은 이를 위하는 마음이 남았기 때문이며, 내 안에 상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의 진짜 가치가 난 자리에 남는 것이라면, wrm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으리라고 나는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엔 좋은 무엇이 흔하게 사라진다. 그리는 이 많은 wrm은 왜 없어져야 했을까. 아쉬움과 그리움과 상실을 남기면서까지. 나는 어찌할 수 없이 푸르른 검색창을 열고 wrm의 사연을 살피기 시작한다.
젊은 예술인을 지원하는 곳이라고 wrm의 정체성을 정의한 기사는 서울시와의 계약 종료로 폐관이 결정됐다 적고 있다. 2017년 개소 이후 서울시와 두어 차례 위탁 계약을 연장해 가며 운영해 왔는데, 지난해 계약연장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윗선에서 결정됐다'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 들은 전부였다는 센터장의 말 뒤로, wrm뿐 아니라 서울시 내 출판인이며 예술인을 지원하는 여러 공간과 단체가 비슷한 운명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서울시의 가장 윗사람은 시장일테니, wrm의 폐업은 오세훈 시장의 결정인 걸까. 뭐, 그 탓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박원순으로부터 오세훈으로 서울시의 권력이 이동한 뒤 수많은 예산이 삭감되고 정책이 폐지된 건 사실이니까. 또 어떤 정책은 새로 일어나니 그것이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이라고, 나는 우측 페달이 엑셀인지 브레이크인지 헷갈리는 무능한 운전자가 된 기분으로 책장을 넘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