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은 처음 알았다.
김아영
내 알바 경력이 아직 6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 성미가 까칠해 보이는 한 남성 손님이 담배를 사러 오셨다. 손님은 대충 손가락질로 "저거 줘"라고 진열장을 가리켰다. 그것도 반말로.
나는 첫눈에 그가 만만치 않는 손님이란 걸 알아채고는 잔뜩 긴장했다.
"이거요?"
"아니, 저거."
손님이 서 있는 계산대 바깥쪽에서 담배 진열장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 성의 없는 손가락질로는 정확히 알아맞추기 힘든 거리였다. 내가 자신 없게 짚은 진열장 부분은 정답이 아니었다. 나는 손님에게 맞다는 대답을 얻어내고자 손님의 손끝이 향하는 곳에 있는 담배를 하나씩 짚었다.
하지만 내 어림짐작은 번번이 어긋났고, 손님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짜증이 실렸다. 그럴수록 내 목소리는 더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기 오른쪽이라고!"
손님은 끝까지 자기가 찾는 담배 이름을 대지 않았다. 잔뜩 위축된 채로 하나하나 찾아가던 나는 한참 만에 손님이 원하는 담배를 찾았다.
"그래, 그거! 쯧, 답답하기는…."
손님은 지폐를 툭 계산대 위로 던졌고 내가 잔돈을 꺼내는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매섭게 쏘아보았다. 나는 그날 계산원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계산원은 무능한 사람이 겨우 할 수 있는 직업, 워낙 단순해서 일 같지도 않은 직업, 가벼운 수입만큼 가벼이 여겨도 되는 직업. 아무리 자부심을 끌어안으려 해도, 경력과 상관없이 나는 계산 과정에서 '불통'의 책임을 홀로 뒤집어써야 하는 무력한 종사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 감동은 전혀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와서 이 일을 계속하게 한다.
보름 뒤가 명절이라서, 계산대에 손님이 내내 끊이지 않던 주말이었다. 처음 그 손님은 여느 손님과 다른 점은 거의 전혀 없었다. 40대 여성 분이었고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남편 분,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함께 계산대에 오셨다.
카트에 있던 상품을 하나씩 레일에 올리고 내가 바코드를 찍을 때까지 세 분이 포장대에서 기다리셨다. 계산하면서 손님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들었는데, 마트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를 계획인 것 같았다.
"아, 커피를 미리 주문 해 놓을 걸. 바로 찾아가게."
"내가 지금 해 놓을까?"
남편 분은 아내 분에게 카드를 받아 먼저 나가셨고 아내 분과 따님이 상품을 종량제 봉투에 하나씩 담았다. 나는 정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상품을 다 담은 손님은 이내 날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 했다. 계산원이 계산을 왜 안 하고 그냥 서 있냐는 뉘앙스였다. 그 분이 물었다.
"제가 카드를 안 드렸었나요?"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데 여념이 없어서, 미처 계산원들에게 카드를 내밀지 못한 손님을 이미 여럿 봤기에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주셨다고.
"네. 손님, 아까 남편 분께 (카드를) 주시는 것 같던데…."
"아! 내 정신 좀 봐. 난 또 선생님 드린 줄 알았네."
손님은 자신의 착각이 스스로 우스웠는지 머리를 내저으며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그런데 나는 그분의 착각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그 분이 계산원인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 '선생님'이란 호칭을 쓴 것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아가씨', '어이'만 듣다가... 선생님이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