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일보> ‘광부엄마’는 은퇴 선탄부들이 진폐장해등급을 받고도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강원일보
- 산업재해 입은 선탄부들을 위해 어떤 제도개선이 시급한가.
"앞서 '모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재해를 입은 선탄부들을 지원하겠다는 말만 있을 뿐 실제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이다. 지금 당장 큰 움직임은 없지만 제도 개선과 관련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건 분명하다.
광부로서 선탄부로 평생을 일하다가 진폐증에 시달리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본인이 먹고 살려고 스스로 택한 일인데 그걸 왜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느냐' 같은 인식이 비일비재하다.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국가 지원에 대한 인식이 각박해서 안타깝다.
광부와 선탄부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얘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분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국가 지원에 사회적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 지원하지 않으면 10~20년 뒤 이분들은 돌아가시고 없다. 즉 광부와 선탄부에 대한 지원은 자연스럽게 일몰되는 지원이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다 불필요한 비용으로 보는 사회 인식은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 선탄부를 다루면서 피해자보다는 산업역군이자 누군가의 엄마이자 누나란 점을 강조했는데?
"'광부엄마'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신파로 흐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 해도 노골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파는 독자들이 외면할 테니 말이다. 담백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선탄부들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지만 엄연히 지역사회 구성원이기를 바라고 선탄부로서 자긍심도 갖고 있다. 피해자보다는 광업소 노동자,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선탄부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 노동자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황당한 터부는 무엇이었나.
"여러 가지를 들었다. 도시락은 꼭 빨간색 보자기로 싸야 하고, 밥을 숟가락으로 담는 횟수도 정해져 있고, 광부 남편이 출근하면 조심히 잘 들어오라는 의미로 신발은 집으로 들어오는 방향으로 돌려놔야 하고, 여자 목소리가 옆집 밖으로 새면 안 된다는 등이다.
가장 충격적인 건 광부가 출근하는데 여자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오늘 재수 없다' 하고 출근 안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광부가 집으로 돌아가면 대개 집에 있는 부인이 남편 앞을 가로질러 간 여성을 찾아가 '우리 남편이 당신 때문에 일을 못 나갔으니 오늘 일당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그러면 요구받은 분이 자연스럽게 일당을 줬다고 한다. 그분들은 그런 시절을 살아왔던 건데 굉장히 충격받은 터부 중 하나다."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큐 제작
- 보도만 해도 힘들 텐데 다큐까지 기획한 이유는?
"'감춰진 진실-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보도로 202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키긴 했지만 영상으로 기록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저는 천생 신문기자라 활자매체가 주는 묵직한 메시지와 울림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빠르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영상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기 위해서라도 영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무조건 다큐를 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맘으로 시작했는데 결과가 좋아 만족스럽다."
- 유튜브에서 다큐로 공개한 지 열흘 만에 1400여 명이 봤는데.
"다큐가 '광부엄마' 보도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다큐를 처음 만들어보는지라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취재진 중 한 명이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탄광도시 이해도도 높은 편이라 무사히 제작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보셨고 특히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지금도 하루에 20회 이상 조회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엄마 생각난다' '아버지 생각난다' '굉장히 감동받았다'고 해주시더라. 회사 차원에서 단체상영 혹은 다큐가 담긴 USB 배포 등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
- 다큐에 내레이션을 넣지 않았더라.
"내레이션을 넣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지상파 다큐멘터리를 보면 배우들이 내레이션을 해서 화제가 되고, 많은 시청자들이 보게 되는 경우가 꽤 있지 않나. 그래서 처음 나온 아이디어가 '강원도 정선 출신 배우에게 연락해서 내레이션을 부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빈 배우 말고는 정선 출신 배우가 별로 없더라(웃음).
배우 내레이션이 여의치 않게 되니 AI 내레이션도 고민했지만 감정을 온전히 전달해주지 못하는 느낌이라 포기했다. 결국 내레이션을 아예 빼고 철저하게 현장음으로 가기로 했다. 대신 다큐 시작과 말미에 은퇴하신 선탄부 전옥화 님의 '지독한 가난'이라는 시를 넣었다. 지금껏 이야기한 탄광도시의 모습이 굉장히 잘 녹아 있는 시라서 전옥화 님이 직접 읽어주시면 진정성이 훨씬 잘 전달될 거라 생각했다."
지역언론이 더 큰 시장에서 경쟁할 길 열릴 것
- 디지털미디어국 기자 2명을 제외하고 취재진 부서가 다르더라. 어떻게 팀을 이루게 되었나.
"어느 조직이나 부서 간 칸막이라는 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언론사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언론은 특히 기획보도를 하는 게 더 녹록지 않다. 인원은 한정돼 있고 기획취재 외에 각자 일상으로 맡은 바 임무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회사와 데스크 차원에서 '광부엄마' 보도를 야심차게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지원이 충분히 이뤄진 덕분에 팀을 꾸릴 수 있었다. 서로 부서는 다르지만 하나의 주제를 갖고 팀을 이뤄 취재하는 게 기획보도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 <경인일보>가 4월 수상소감에서 "지역언론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지만 고군분투하면서 좋은 기사를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지역언론으로서 <강원일보>의 어려움이 있다면.
"언론환경 자체가 너무 어렵다. 신문은 사양산업이고 방송도 경쟁해야 할 플랫폼이 많다. 지역언론은 더 어렵다. 지역 인구감소는 지역소멸이라는 표현까지 쓸 수준으로 심각하다. 독자 감소가 눈에 띄게 보인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위기이고 우리만의 위기도 아니다.
2007년 <강원일보>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제가 쓴 기사를 서울까지 닿게 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때 '광부엄마' 보도를 했다면 민언련에서 좋게 평가해주시지 못했을 거다. <강원일보> 홈페이지 외에는 보도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강원일보> 기사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예전엔 방송사가 아니면 영상을 보여줄 수 없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역언론에겐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지역언론이 더 큰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열릴 거라고 본다."
- 모두가 언론의 위기를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기회'라고 말하는 게 흥미롭다.
"AI가 기사를 쓰고 편집하는 시대가 아직 올듯 말듯 안 오고 있는데 거의 온 것 같다.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AI가 훨씬 잘 쓰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느끼는 게 '광부엄마'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체온으로 취재해야 하는 보도는 AI가 결코 할 수 없는 보도라는 거다.
독자들은 사람의 체온이 필요한 보도에 더욱 열광하고 깊게 공감한다. 그런 보도를 하려면 취재영역이 읍, 면, 동을 넘어 통, 반, 리 단위까지 들어가야 한다. 더 깊숙이 골목으로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보도 말이다.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지역언론이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본다면 오히려 지금이 지역언론에겐 열려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 강원일보> ‘광부엄마’가 2024년 8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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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속 '엄마'들 담은 다큐, 이런 건 AI가 결코 못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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