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나가면서 아이들 먹을 간식 준비아이들 태어나고 난생처음 9 to 6 근무를 하게 되었다. 단 이틀이지만 아이들과 내겐 너무나 커다란 변화였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구혜은
13년 전, 나는 육아와 일 중에서 '육아'를 선택했다. 당시 회사는 인수 합병 절차를 진행 중이었고, 회사는 혼란스러웠으며 일도 몇 배로 많아졌다. 입사 8년 차 팀장이었던 나는 가장 바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나지만, 이대로 쭉 회사를 다니다가는 출산이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이를 낳고 싶었다.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병행하기엔 어렵겠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한창 일하며 경력을 쌓을 시기에 회사를 떠났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고, 육아를 하는 동안 부동산에 눈을 뜨게 되어 자산도 꽤 늘렸다. 나는 어떤 일에서든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남의 손에 맡기기보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창조하는 데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동기 부여가 되는 사람이다. 이런 나의 성향은 육아에서도 적극성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큰 아이 어릴 적에는 부동산 공부를, 둘째를 키울 때는 엄마들과 육아 모임을 만들어 만 2년을 함께 했다. 매주 숲에 모여 계절 놀이를 기획하고, 공동부엌에서 절기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일, 아이들과 살 부비며 함께 웃고 울던 그 시간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시작한 대체의학 공부를 집밥과 가족 건강 관리에 적용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내 손으로 꾸려가는 나의 세계가 나의 가족을 지키는 일등 공신이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일에 대한 갈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득 찾아오는 나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곤 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인가?' , '나의 사회적 쓸모는 무엇인가?' 살림과 육아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이런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주진 못했다.
문득 나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물음표가 켜질 때면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결혼 전 돌아가신 친정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올라왔다. '애 봐줄 사람이 없어서 믿고 맡길 곳이 없어서... 내가 일을 못하지, 내가 능력이 없나? 날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지' 이 마음은 나를 피해의식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워킹맘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 내 처지에 대한 한탄, 이런 것들이 말이다.
영원히 아기일 것만 같던 아이들이 이제 초5, 초2학년이다. 엄마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아이들을 보며 나도 조금씩 사회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취업 교육도 받아보고, 이력서도 내고, 몇 차례 면접도 보았다. 많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수업할 기회도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를 불러주는 일, 내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일을 선택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