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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과 구토 참고 일하다... 어느 돌봄 노동자의 죽음

4대 보험 가입, 산재 처리 등 법 테두리 밖에서 일하는 간병사들

등록 2024.09.06 16:18수정 2024.09.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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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국 곳곳 응급실 운영 파행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구급차가 주차돼 있다. 이날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배치했다.

전국 곳곳 응급실 운영 파행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구급차가 주차돼 있다. 이날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배치했다. ⓒ 연합뉴스


지난 8월 31일 진주 A요양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왕선영(62)씨가 구급차에 실려 B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왕씨는 평소와 달리 이틀 전부터 극심한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간병' 일을 하는 그에게 배정된 6명의 환자를 한꺼번에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통증을 견디다 못한 그는 함께 일하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링거 수액을 서둘러 맞았지만, 신통치 않았다.

왕씨를 지켜보던 간호사는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봐야 할 것 같다"고 판단하고, 급하게 119에 신고했다.

뇌출혈 의심되는데, 일하다 뒤늦게 찾은 병원

구급대원은 환자 상태를 살피며, 보호자를 찾았다. 왕씨의 유일한 보호자는 중국에서 함께 입국해 간병일을 하는 언니 뿐이었는데, 왕씨의 언니는 한국말이 서툴러 기본적인 의사 소통을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속해 있던 간병인 협회 회장이 왕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한국인 간병사가 병원에 동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겨우 의료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으나 왕씨의 의식은 더욱 흐려졌고, 담당 의사는 뇌출혈이 의심된다며 머리쪽의 CT촬영부터 해보자고 했다. 왕씨의 머릿속은 이미 많은 양의 출혈이 진행되어 수술을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고 했다. 담당 의사는 마지막 수단으로 '약물 치료'를 권했다.

그렇게 왕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튿날 오후 3시께 숨지고 말았다.
동료 간병사에 따르면 현재 왕씨는 B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으며 곧 중국에서 가족들이 입국하는대로 화장 후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C간병사협회 박미자 회장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지간에 간병사들은 일하다 다치거나 사망해도 산재처리가 안 된다. 동료 간병인의 죽음이 너무 쓸쓸하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동권 밖에서 일하는 사람

왕씨는 조선족(한국계 중국인)으로 친언니와 함께 2년 전 F4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입국했다.

요양원과 달리 요양병원의 간병인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없이도 취업이 가능하다는 직업소개소의 알선이 있었고, 타국에서 언니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60대 여성이 하루 일당으로 15만 원을 벌 수 있는 곳이 거의 유일무이하기에 그는 언니와 함께 진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동료 간병인들은 왕씨에게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면 병 난다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병원에서 나가서 쉬고 오라"고 타일렀지만, 그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치 일당도 포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단디뉴스 취재 결과 진주 지역 요양병원 공동 간병실에서는 간병사 1명 당 환자 적게는 6명에서 많게는 14명을 한꺼번에 돌봐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간병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의료행위 이른바 '석션(스스로 가래를 뱉지 못하는 환자의 구강에 기계를 삽입해 가래를 제거하는 행위)'을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의료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간병인에게 떠맡기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안 하려는 '간병'일 … 외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한국인들은 4대 보험이 보장되고 근무 조건도 안정적인 요양원으로 근무하거나 주간보호시설로 자리를 옮긴다.

대신 요양병원의 간병인은 4대 보험이 안 되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병실에서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데 그 공백을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24시간 간병'일은 가족이 있는 한국인들은 일하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중국 동포들에게 방문취업 비자(H2)를 열어주고 2010년 간병인에게 재외동포 비자(F4)를 주면서 매년 5만여 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업계에서는 이 인력이 3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지난 1월 30일 <매일경제>가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입원급여 적정성평가 기준 1~5등급에 해당하는 국내 요양병원 20곳씩 총 100곳을 표본조사한 결과 외국인 간병인(조선족, 고려인 출신 간병인 약 80% 이상 추산)만 고용한 요양병원이 44곳에 달했고, 반면 한국인 간병인만 일하고 있는 병원은 22곳, 나머지 34곳에서는 한국인과 외국인 간병인이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외국인 간병인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단디뉴스에도 실립니다.
#간병사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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