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개발 직후 행담도 모습. 주변 갯벌을 매립하고 평탄화 작업을 해 지형마저 애초 삼각형에서 타원형으로 변했다.
당진시
여기에 등장하는 '영웅 바위'는 행담도 앞에 있다. 토정 이지함이 아산 현감에 제수된 때가 1578년이니 약 450년 역사를 품고 있다. 이 전설은 토정 이지함 선생의 예언 능력을 토대로 육지였던 곳이 큰비로 바다가 됐다고 설명한다. 또 재난이 닥칠 때 관리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비슷한 이야기는 1979년 당진군이 채록한 '한진 앞바다 터진 이야기'로도 전해진다. 실제 이지함은 걸인들의 구제책으로 걸인청을 세우는 등 백성 구휼에 힘쓰다가 1578년 세상을 떠났다.
전설처럼 행담도가 조선시대 중반까지 육지였는데 섬이 됐다기보다는 당시 지진 이나 해일 또는 큰비로 물난리를 겪은 일로 생긴 전설로 보인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바뀐 한자 하나... 하지만 마을주민들은
'행담도' 지명에 대한 첫 기록은 1864년(고종 원년)에 발간한 '대동지지'에 '行澹島'(행담도)로 처음 등장한다. 여기에는 '行澹島(행담도)는 신북면(현 신평면)의 동쪽 경계에 있는 작은 섬으로 그 아래에는 대진(한진)이 있고, 수원 가는 지름길로 바다 한가운데는 영웅암이 있다'고 기록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심한 백중사리 동절기에 물이 빠져 매산리 육지 쪽에서 섬으로 물건을 지고 갈 수 있다' 해 行(다닐 행), 澹(움직일 담, 맑을 담)이라고 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