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한국 커피역사 이야기책 표지
피아리스
한국 최초의 카페는 어디일까?
한국 최초의 카페는 어디일까. 커피가 대중음료로 자리 잡고,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 시간을 보낸 건 언제부터일까. 그와 같은 궁금증에 답하는, 그저 카페만이 아니라 커피와 관련한 온갖 사료를 한 데 묶은 책이 <개화기 한국 커피역사 이야기>(2021년 출간)가 되겠다.
역사와 커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두 작가 김시현과 윤여태가 지은 책은 조선조 문헌에 커피의 존재가 처음 기록된 순간부터 커피가 실제 전래된 때, 1899년 기록상 한국 최초의 커피를 파는 가게인 '리프레시먼트'가 문을 열고, 카페와 다방 문화가 진화하고 발전해온 역사까지를 알기 쉽게 소개한다. 커피라는 상품과 그로부터 일어난 문화를 한반도의 지역적 역사 가운데 발췌해 정리하는 과정이 이색적이다.
이와 같은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저술은 역시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이겠다. 대항해시대 이후 열린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쟁탈전과 그 사이 호사품에서 보편적 감미료로 지위를 확보한 설탕의 자원으로서의 가치, 다시 그로부터 촉발된 경제와 권력의 문제까지를 폭넓게 다룬 저술이 아닌가.
'설탕이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는 역사학계의 일침이 나올 만큼 권력관계와 긴밀히 엮여온 자원의 여러 요소를 인류의 근현대사와 엮어 서술했다. 이후 설탕 뿐 아니라 커피, 면직물, 견직물, 상아, 금 등 다양한 상품을 매개로 세계사와 지역사, 문화사 등을 엮어낸 도서가 폭넓게 읽혔다. 커피 부문에선 스튜어트 리 앨런과 같은 작가의 저술이 눈에 띈다.
본래 역사에 관심이 있거니와, 위에 언급한 일련의 흐름 가운데 특정한 물품을 매개로 한 역사와 문화 서술에 관심이 생겼던 터다. 우연한 계기로 손에 쥔 <개화기 한국 커피역사 이야기> 또한 그와 같은 저술이 아닐까 궁금증도 들었다. 한국 땅에서 글 쓰는 이로 살다보니 매일 적어도 한두 잔쯤 커피를 마시는 일상이 아니던가. 기왕 마실 것 제대로 알아보자 하는 마음에 이 책을 펼쳤다.
개화기란 무엇인가부터 정의하고 들어가는 책은 조선부터 대한제국에 이르는 한반도 근대 국가의 쇠락 가운데 커피의 이야기를 마치 디카페인 커피에서 카페인을 추출하듯 뽑아 올린다. 1845년 사신으로 나갔다 들어온 권대긍이 커피의 존재가 기록된 책 <해국도지>를 헌종에게 바친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에도 전해진 중국 지리서 <영환지략> 속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남미 등지의 특산물로 커피가 등장하는 대목 등을 언급한다.
이처럼 해외에 대한 지식으로써만 전해지던 커피가 19세기 조선에 발을 디딘 천주교 선교사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이후 서양 여러 나라와 직간접적으로 교유해야 했던 왕실과 양반들 사이에서 커피가 사치품이자 기호품으로 향유되기에 이른다.
책은 고종이 커피맛을 잘 알아 커피에 독을 탄 암살시도에도 죽음을 피했다는 이야기, 또 해외 유력인사들을 접대하기 위하여 정부기관에서 커피잔을 비롯한 서양식 식기를 마련하고 빌리는 이야기, 한반도를 방문한 외국인이나 외국에 나간 조선인들의 기록을 덧붙이는 등 당대 저술 가운데 발췌하기 쉽지 않았을 커피와 관련한 온갖 이야기를 수집해 소개한다.
카페에 모여 예술과 시국을 말한 이들
책이 본격적으로 재미를 빚는 지점은 사료가 그나마 풍부해지는 시점부터다. 신문이 그 일익을 담당한다. 1896년 9월 15일 <독립신문>에 실린 어느 상점 광고에서 로스팅된 자바모카 커피가 입수됐다는 내용이 언급되는데, 이것이 커피가 한국사에서 처음 광고된 기록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커피는 더욱 널리 보급된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 광고에는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하와이, 이탈리아와 브라질, 멕시코, 엘살바도르, 대만, 자메이카, 앙골라, 과테말라 등지의 원두를 들여왔단 광고며 관련된 지식을 소개하는 기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아예 가게 광고도 등장한다. 1899년 앞서 언급한 '리프레시먼트'가 커피를 파는 최초의 가게로서 <황성신문>에 광고를 실었고, 이듬해엔 한국 최초 카페란 뉴스기사가 온라인 상에 여럿 올라와 있는 '송교청향관' 개업 광고도 실렸다. 고종황제가 처음 덕수궁 돈덕전에서 커피를 마셨단 기록은 1901년에 있으며, 끽다점(喫茶店)이란 이름으로 커피를 파는 전문적인 가게가 곳곳에 생겨나는 시기가 1910년부터 열린다.
책은 1920년대부터 열리는 모던 시대, 즉 서구문화에 익숙한 식민치하 자산가 계층이 활보하던 시대를 커피와 엮어 소개한다. 청목당, 명하, 모리낭하 등 일본식 술집을 겸하는 커피하우스의 뒤를 이어 은송정, 마루비루, 릴리, 스즈랑, 긴자, 백엽, 앤젤 등 일본인이나 재력 있는 조선인이 경영한 카페들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우마관 인근에 위치해 배우들이 자주 얼굴을 비춰 유명해진 낙원회관, 신여성이자 배우로 알려진 복혜숙의 비너스 같은 곳은 서서히 당대 지식인의 사랑방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비너스엔 서영, 서월영, 황철 등 당대 유명 배우들과 현진건, 구본웅, 여운형 등 소설가와 정치가들도 드나들었다고 전한다.
1940년대 <조선일보>가 최초의 다방이라고 보도하기도 한 카페 '카카듀'에 대한 묘사도 이색적이다.
커피포대인 마포를 벽에 붙인 뒤 그 위에다 가면을 걸어놓고, 촛불을 켜고, 간판에는 붉은 칠을 한 바가지 세 쪽을 달아놓았기 때문에 매우 이채로웠다. '하와이'에서 왔다는 '미스 현'의 존재 역시 강렬했다. - 205p
책은 카카듀야말로 유럽식 살롱문화를 이땅에 정착시키고자 한 최초의 커피하우스라 평가하는데, 그 시절 카카듀 주인장이며 미스 현과 같은 이들이 이를 들을 수 있다면 참으로 감격하지 않을는지. 실제로 카카듀에선 톨스토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외국문학 좌담회가 열리고, 예술 포스터 전람회가 개최되기도 하였으나 경영난으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이밖에도 이광수를 비롯해 일단의 신문기자들이 즐겨 찾았다는 '멕시코',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이순석의 '낙랑파라', 무엇보다 작가 이상이 직접 차린 '제비'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중 이상은 카페라는 공간을 유달리 좋아하여 제비가 망한 뒤에도 '쯔루', '맥' 등의 다방을 차렸다가 폐업했고, '69'라는 가게도 열려 했으나 허가취소로 열 수 없게 되었다.
극작가이자 비평가이기도 했던 유치진은 외관만 보자면 유럽 느낌이 물씬 풍기는 '플라타나'를 열었는데, 책에 실린 사진엔 'SALON LE PLATANE'라는 프랑스어가 큼지막하게 내걸려 외국어를 있어 보이게 여기는 오늘날 풍토가 오랜 뿌리가 있음을 알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