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편의점에 가면 청년보다 시니어 계산원을 더 자주 만난다.
김아영
불상사를 겪은 이후로도 행사 상품을 저장하는 나의 행보는 계속되었다. 일부러 재고 조회까지 해서 해당 매장을 방문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번 달엔 말린 고구마바에 꽂혀서 해당 상품이 있는 편의점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한 편의점을 방문했는데 아뿔싸, 진열된 상품이 하나밖에 없었다. 이럴 땐 다른 선택 없이 보관 쿠폰을 발급 받아야 했다. 그러나 계산대에 서 있는 분은 영 믿음이 가지 않는 40~50대 직원 분. 그냥 포기하고 가자니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아 아까웠다.
나는 똑같은 불상사를 또 겪을까 걱정하면서도 계산대로 향했다. 마침 계산원은 다른 손님의 상품을 계산하고 있었다. 계산원의 몸짓과 표정을 훔쳐보며 경력을 가늠해봤지만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이게 행사 상품인데 진열대에 하나밖에 없으니 증정품은 앱에 보관해 주시라고 했다. 그러자 계산원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날 보며 이렇게 물었다.
"손님, 혹시 다음에도 저희 편의점에서 사 가실 건가요?"
아, 역시나. 앱 사용법을 모르니까 그냥 다음에 와서 이름을 대고 가져가라는 거구나 지레 짐작했다. 나는 맞다, 아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러자 계산원의 입에서 뜻밖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게 쿠폰으로 보관하면 유효기간이 짧아서 못 쓰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으시더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두 개 가져가는 걸로 찍어 놓고 저희가 영수증을 보관해 드릴게요. 그럼 원하실 때 편하게 찾아가시면 돼요."
그 순간 나의 자만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계산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산원의 말대로 거기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영수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아,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
나는 영수증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시름에 잠겼다. 띄엄띄엄 십 년 경력을 채우면 뭐하나. 눈앞의 계산원처럼 진심으로 손님을 대한 시간만 따지면 일 년도 채 안 될 것을. 게다가 경험이 부족한 계산원과 비교하며 '적어도 나는 저렇지는 않잖아' 하고 자위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제가 언제 여기 또 올지 잘 모르겠어서…."
확신이 없는 내 대답을 듣고 계산원은 망설임 없이 "그럼 쿠폰으로 넣어 드릴게요" 친절하게 응대하고 지체 없이 계산을 마쳤다. 계산원이 하찮은 직업이라고 무시하고 하대하는 손님들을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게 바라봤던가. 그러면서 정작 내가 편견에 갇혀 나이로 계산원을 평가하다니 오래 반성할 일이었다. 나는 내 오만과 위선을 부수어 준 그 계산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분이 얼마나 진심으로 자기 일을 대하는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돈, 명예, 지위로 직업의 서열을 나누는 게 현실일지라도 역시 사람은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히 임할 때 가장 빛나는 법이다.
계산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 업신여기는 직업이면 어떠랴. 내가 볼 때 계산원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직업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 속 행복을 전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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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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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원에게 갑질 당했지만 못된 생각은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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