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포도 덩굴 사이로 듬성 듬성 보이는 하늘뜨거웠던 여름을 막아주었던 포도 덩굴이 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한 여름을 보냈던 고양이들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이제는 쪼일만한다. 옆으로 보이는 것은 방아(배초향)다. 라벤더처럼 보랏빛 꽃을 이쁘게도 피워내지만 향도 좋다. 너무 무성해서 자를법도 한데 고양이들을 위한 할머니의 '그늘서비스'이다.
김은아
할머니는 실상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으신단다. 어느 날, 새끼 고양이 나비가 마당에 들어와 우는데 갓 젖을 뗀 너무도 어린 고양이라 급히 밥 한술 물 말아 주었는데, 어찌나 허겁지겁 먹던지 그때부터 매일 밥을 밖에 두었다고 하신다. 일단 어느 정도는 성장해서 험한 세상을 헤쳐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속도 모르고 그런 나비가 아예 눌러앉은 것이다. 정을 주면 자세히 보이고, 자세히 보면 통한다고 했던가. 홀로 있는 나비가 외로워 보였던 할머니는 길고양이 '호순이'까지 입양을 했다. 나비를 위해서.
성깔이 까칠해서 손도 댈 수 없었던 호순이이지만 나비에게는 상냥한 고양이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 두 고양이는 달 밝은 밤에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며 마실을 다녔고,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날이면 하늘을 이불 삼아 늘어지게 잠을 잤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함께 쥐를 좇고 참새도 잡았다. 오갈 곳 없는 이 고양이들에게 할머니 집은 더할 나위 없는 살만한 도시이자, 낭만 가득한 둘 만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언제든지 산책 나갈 쾌적한 산야, 풍족한 먹거리, 편히 쉴 집, 그리고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짝꿍까지 있으니 도시를 잘 택한 것이다. 두 마리 고양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할머니에게도 쏠쏠한 기쁨과 뿌듯함이었다. 일종의 작고 건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이다.
"아이고 저리도 좋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지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살아야지."
삼순 할머니는 늘 그리 말씀하셨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어
호순이 입양으로 만나게 된 호순이 엄마와 삼순 할머니는 모녀처럼 가까워졌다. 호순이 엄마는 한 달에 두세 번은 꼭꼭 들러 할머니와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호순이 엄마는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세상에 하나뿐인 쌍둥이 동생이 있다. 동생이 키우던 고양이를 돌보다 고양이 엄마가 되버렸다고 했다.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도 곱고 좋은 직장도 있다. 소위, 갖출 것을 다 갖춘 그녀이지만, 고양이들 속에 자신을 묻고 지낸 지 오래다.
그럼에도 삼순 할머니와는 궁합이 잘 맞는지 대화도 많이 하고, 가깝게 지낸다. 고양이가 맺어준 인연이다. 그녀가 구조한 고양이들을 삼순 할머니가 살뜰히도 돌보고 있으니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는 위로인지도 모른다.
빈 자리는 다시 채워지고
얼마 전 나비가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났다. 마을에 나갔다가 쥐약이 든 음식을 먹었던 모양이다. 호순이가 일주일간 곡기를 끊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저리 있나…. 사랑하는 짝을 잃었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야."
호순이 엄마가 암고양이 찡찡이를 데려왔다. 호순이처럼, 그리고 나비처럼 버림받은 길고양이다. 몇 달간은 데면데면하더니 이제 제법 가까워졌다. 밥도 같이 먹고 자리도 나누어 쓴다. 산사람은 산대로 살아간다더니만 고양이들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저 왔어요~!"
"야옹~ 야옹~!"
"멍멍멍!"
호순이 엄마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세 마리의 식구들이다. '앗 엄마다! 맛있는 간식이다!' 하는 것만 같다. 벌써 5년째란다. 호순이 엄마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삼순 할머니를 찾아온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안 되어도 들러 꼭 할머니와 고양이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호순이 엄마 온다는 소식에 삼순이 할머니는 냉장고를 뒤적이더니, 방아잎과 쑥갓, 부추를 뜯어 얼른 부침개 한 장을 부쳐내신다. 움직이는 할머니 발걸음이 경쾌하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사람에게는 오히려 활력이 되고 양분이 되는 것 같다.
그저 옆에 있어만 주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