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직접 수확해서 말린 고추
조성하
몇 년 더 흘러 나는 결혼을 했고, 남편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됐다. 구성원이 늘어난 우리는 전보다 더 커진 대대(大大)가족이 되었고, 명절이 되어 나의 동반자도 드디어 외할머니의 토란국을 접하는 날이 왔다.
배우자가 식감에 다소 예민한 편이라 곱창, 닭발, 가지 등등 물컹한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데, 이 미끄덩한 토란을 먹자마자 뱉진 않을까 은근히 초조해졌다. 그런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가 종종 하던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거 정말 보양식이야, 한 번 먹어봐".
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한 입 떠 먹었는데, 먹자마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식감은 둘째 치고, 맛이 깊다고. 어떻게 이렇게 영양 넘치는 맛이 있을 수 있냐고. '어라?' 하면서 덩달아 나도 한 술 떴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씹을수록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은근하게 퍼졌다.
이게 어릴 적 내가 알던 그 토란이 맞나?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제야 토란의 저주에서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황 서방이 좋아하는' 토란국 특식
이후 토란국은 '우리 황 서방이 좋아하는' 이란 타이틀을 달면서, 가족들 사이 완벽한 특식으로 자리 잡았다.
직접 키운 고추를 건조기에 말리고 빻아 만든 고춧가루, 손수 갈아낸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처럼 쉼 없이 전해주신 외할머니의 작품인 토란국. 그런 명품 토란국을 받아 먹으며 우리는 자주 명절처럼 시간을 보내다가, 작년 말 사정이 있어 결국 대가족을 떠나 서울 바깥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삿날을 며칠 앞둔 저녁, 나는 남편과 같이 외할머니 방에 이불을 나눠 덮고 앉아 들깨 토란국 레시피를 받아 적었다. 외할머니는 말해주면서도 작게 미소 짓는다.
"젊은 아-덜이 이걸 우찌 할 수 있을기고? 암턴, 잘들 해 보래이".
감으로만 만들어 내던 음식을, 순서와 말로 정리하려니 쑥스럽다며 외할머니는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