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큰 마트에서는 보통 계산대를 두 개 이상 운영한다.
김아영
출근 사흘째 되는 날, 땀을 뻘뻘 흘린 채 도착한 날 보고 다른 직원들이 다들 걱정 어린 소릴 했지만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평소 걷는 게 습관이 된지라 이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속이 이상했다.
대식가인 체질을 고려하면 평소보다 적게 먹은 편인데도 속이 징건했다(더부룩했다). 마침 점장님이 선물로 아이스크림이 들어왔다며 직원들에게 하나씩 돌렸고 나는 다른 계산원 이모와 카스텔라 아이스크림을 반씩 나눠 먹었다. 시원한 걸 먹으면 속이 좀 진정될까 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러다 말겠지 싶던 복통이 점차 심해지고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두 팔로 계산대를 짚지 않으면 서 있기도 힘들었다. 조금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계산을 해나가는데 한 손님이 계산이 끝난 뒤 나에게 물었다.
"어디 아파요?"
엄마뻘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는데 몸이 안 좋은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얼굴이 창백해. 너무 아파 보이는데."
손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껏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냥 살짝 어지러워서… 괜찮아요."
손님이 돌아간 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힘겨운 한숨을 내쉬었다. 갈수록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바쁜 시기에 몸이 안 좋다고 조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좀 전의 그 손님이 장을 덜 보았는지 물건을 더 골라 다시 계산대로 왔다. 그러더니 아까보다 더 심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좀 쉬어. 쉬어야겠어."
손님은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옆 계산대로 가서 계산원 이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요, 이 분 좀 쉬게 해줘요. 얼굴 좀 봐. 안색이 너무 안 좋아."
계산원 이모는 날 보더니 어디 안 좋은지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손님은 끝까지 강변했다.
"이러다 쓰러진다니까. 내가 볼 땐 얼른 쉬어야 해."
손님이 어찌나 힘주어 말씀하시던지 다른 사람들까지 이 광경을 보게 되었고 점장님과 사모님 모두 날 보고 얼른 들어가 보라고 하셨다.
"아프면 말을 하지 뭘 참고 있어. 아무래도 더위 먹은 것 같다. 집에 갈 땐 꼭 버스 타고 가."
이쯤 되니 내가 계속 있는 게 오히려 민폐겠다 싶어서 양해를 구하고 출근한 지 세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땀으로 끈적해진 몸을 개운하게 씻고 나서 침대에 누우니 손님의 걱정 어린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손님이 아니었다면 미련하게 아픈 걸 참아가며 여태 일하고 있겠지.'
생판 남인 나를 위해 발 벗고 나서 준 그 마음이 고마워서 다음에 만나면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사실 일 경험을 얘기하다 보면 이른바 진상 손님이나 부정적인 얘기를 먼저 꺼내게 되는데,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손님에게 감동 받는 상황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은 편이다.
이번만 해도 손님에게 한 수 배웠다. 자기 볼일만 보고 지나칠 수 있었지만 계산원의 안부까지 신경 써 준 손님의 다정함을 본받아 나 또한 마트에 오시는 한 분 한 분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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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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