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이 '이상한 놈' 때문이다. 임종석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2018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했다. 그는 1989년 3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학생통일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통일을 하지 말자고 선언했다. 그 것도 9.19 평양공동선언 기념식에서 말이다. 임종석은 지난 9월 19일 광주에서 개최된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념사에서 첫 마디로 '통일, 하지 맙시다' 선언한 후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폭탄선언'을 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선언이었다. 임종석이란 인물의 경력, 그리고 9.19 평양공동선언 기념식, 그것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라는 시공간의 의미가 그 파괴력을 배가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주요 언론들이 '통일, 하지 맙시다'라는 말을 헤드라인으로 임종석과 문재인 전 대통령, 그리고 기념식을 한데 묶어 실시간으로 전파했다.
그의 발언은 순식간에 행사장의 주인을 문재인 전 대통령에서 임종석으로 바꿔놓았다. 광주의 소식은 그 의도나 내용과 상관없이 '통일, 하지 맙시다'로 퍼져나갔다. 우선,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셨을 분들을 위해 '통일, 하지 맙시다' 이후에 가려진 임종석의 설명을 정리해 보겠다. 어쨌든 그의 주장은 있는 그대로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기념사(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그는 노태우 정부가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냉전 해체의 국제정세를 빠르게 활용하면서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추진'했던 것처럼, 비현실적인 통일 논의를 그만두고 현실, 즉 UN 동시 가입으로 국제사회에서 각각의 독립 국가(두 개의 국가)로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수용하자고 말했다. 다만 김정은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아닌, '평화적인 두 국가, 민족적인 두 국가'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그는 '평화적인 두 국가'를 수용하고 '통일에 대한 지향과 가치만을 헌법에 남기고 모든 법과 제도, 정책에서 통일을 들어내자'고 주장한다.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을 폐기 혹은 개정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고, '민족공동체통일방안'(국가연합방안)도 '접어두자'는 것이다.
그는 또한 '통일이 전제되어 있음으로 인해 적극적인 평화 조치와 화해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일고 소모적인 이념 논란이 지속된다'며, '남북 모두에게 거부감이 높은 통일을 유보'하고 (30년 쯤)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자고 주장했다.
'이상한 놈'의 주장에 대한 비판
'위험한 놈'과 '무지한 놈'에 대한 분석 글은 이미 몇 차례 정리해 기사화한 관계로 '이상한 놈'의 주장에 대한 분석을 별도로 첨부하려 한다.
#1. 문제 제기 방식
우선 그가 소위 '평화적 두 국가'를 주장한 방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임종석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온당히 논의될 수 있으며 사실 '평화적 두 국가' 논의는 진보진영에서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그가 '9.19 평양공동선언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권위와 그 자리에 참석한 인사들을 대표하듯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 것은 개인적으로 비겁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임종석의 주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사전에 교감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9.19 평양공동선언'은 서문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여망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자고 밝혔다. 합리적인 토론을 거부한 그의 '독자 선언'은 결과적으로 9.19 평양공동선언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 통일을 버리면 평화가 오는가?
두 번째로, 그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이미 두 개의 국가인 만큼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그러한 접근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더 효과적인 방법이란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필자 또한 이러한 '평화적 두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 어느 시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 그런가?
임종석이 말한 바와 같이 노태우 정부는 '냉전 해체의 국제정세를 빠르게 활용하면서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에서 갈등 구조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 반대의 상황이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우호적이라면 몰라도 미중, 미러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평화롭게 협력하면서 오순도순 살아보자'는 그의 주장은 한가하게만 느껴진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기본합의서'가 합의한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동 합의서에서 남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데 합의했다. 한반도에서 갈등 구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두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임종석의 말처럼 통일이 무조건 좋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통일이 정말 옳은지, 혹은 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그가 말한 '불가역적인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은 무정부의 국제정치에 한반도 평화를 맡길 때가 아니다. 우리는 '통일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하자'는 것이 가능은 한지, 냉정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3. 통일에 대한 거부감
마지막으로, "남북 모두에게 거부감이 높은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는 임종석의 주장 또한 정말 그런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필자가 말한 '위험한 놈'과 '무지한 놈'의 말과 행동들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북 주민들의 생각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남북의 구성원은 '모두' 통일을 거부하는가?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필자는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북한 사회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는 필자의 글을 참고해주길 바란다(관련 기사:
김정은의 '두 국가론', 성급한 판단은 위험하다, https://omn.kr/28kl0).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는 선대 수령들에 대한 위험한 도전이며 북한 주민들 또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통일'은 거부감이 높은 과제인가? 이 또한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우리 국민의 통일인식은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통일에 대한 지지가 작지 않은 차이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역설적으로 최악의 남북관계 속에서도 통일은 지지받고 있다. 미래세대가 통일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상당 부분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관련 기사:
통일에 관심 없는 다음 세대를 욕하지 말라, https://omn.kr/2091p).
임종석은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고 '한반도 미래를 후대 세대에 맡기자'고 말한다. 정말 무책임한 말이다. 분명 통일에 대한 정부나 기성세대의 논의에서 미래세대의 의견과 (통일 국면에서) 그들의 선택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통일을 30년 후쯤 미래세대가 어떻게 알아서 할 것이란 말은 국민연금이 바닥나면 그때 논의하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임종석이 제기한 '두 국가' 논의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도 계속 다뤄져야 할 이야기다. 다만 그가 문제를 제기한 방식과 논리 전개는 일부 극우세력과 언론에 의해 평화통일 세력을 친북 세력, 반통일 세력으로 도매금으로 낙인 찍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관련하여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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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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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놈, 무지한 놈, 이상한 놈의 '통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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