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동계곡의 기린교. 조선시대 안평대군의 집터에 있던 돌다리로 알려졌다.
전갑남
서울 도심에 이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니! 종로구 수성동 계곡이 그곳이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계곡이다. 수성동에서 '수'는 물 '수(水)', '성'은 소리 '성(聲)' 자를 쓴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 소리가 크고 맑아서 조선시대부터 '수성동(水聲洞)'이라 불렸다 전해진다.
잃었던 옛 수려한 경관을 되찾다
수성동은 우리 고유 화풍이라고 하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북악산과 인왕산 경승 8경을 그려 담은 <장동팔경첩>에 속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성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읊은 시를 보면 사람 마음을 홀리고도 남음이 있다.
水聲洞雨中觀瀑(수성동우중관폭)
수성동에서 빗속에 폭포를 보고
入谷不數武(입곡불수무) 골짜기에 들어서자 몇 발자국 안가
吼雷殷履下(후뢰은리하) 발밑에 우렛소리 우르르릉
濕翠似裏身(습취사이신) 젖다 못한 산 안개에 몸을 감싸니
晝行復疑夜(주행복의야) 낮에 가도 밤인가 의심되는 도다
ㅡ 추사 김정희 <완당전접> 제9권 중 일부
풍류를 즐기는 거로 하면 빠지지 않은 세종대왕 셋째 아들 안평대군(1418~1453)은 수성궁의 '비해당(匪懈堂)'이라는 정자를 이곳에 짓고 시와 그림을 즐겼다 전해진다.
여기서 '비해(匪懈)'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인 '숙야비해(夙夜匪懈)', '이사일인(以事一人)'에서 따온 말로, 아침부터 밤까지 게으름 없이 한 사람을 섬기라는 의미이다. 정치적 야심을 품은 수양대군에 맞서 어린 조카 단종을 지키려는 의지가 읽힌다.
계곡 좌우 측 인왕산 아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던 수성동 계곡은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서면서 수려한 경관을 잃어버렸다. 그로부터 40년 지난 후, 2012년에 아파트가 철거되고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복원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