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감정은 낙엽처럼 나를 나뒹굴게 만든다.
언스플래쉬
며칠 동안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다. 긴긴 여름이 지나간 뒤, 길 위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누워 개겼다. 어느 깊은 산속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처럼, 마음에 가시를 잔뜩 세워 놓은 채 말이다.
마음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우울증이다. 원래 마음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는 한데,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꽤 깊이 찾아왔는지 전혀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글쓰기는커녕 핸드폰조차 열어보지 않았다. 어느 구석에 두었는지 방전이 되어버린지도 몰랐다. 마치 거대한 동굴 속에 갇혀 버린 듯 멍하니 앉아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입맛까지 잃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단 음식만큼은 무척 당겼다. 초콜릿과 과자 그리고 사탕을 마치 생전 처음 맛보는 사람인양 먹어치웠다. 원래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는 1인인데 말이다.
내 안에 있는 우울한 친구가 얼마 전 유행한 노래처럼, "달디달고 달디단" 음식만을 요구했다. 달콤한 것들을 욱여넣었다. 입이 쓰다. 쓴 맛이 싫어 더 넣었다.
꽤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마음의 업다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로 오랜만에 내 안의 우울을 제대로 마주하니 힘없이 무너졌다. 그동안 약도 잘 챙겨 먹었고, 주 1회 상담도 빠지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아지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당황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올라올 때 대처하는 법을 상담선생님께서 알려줬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머리가 하얘져 기억나지 않는다. 애써 떠올려 보려 노력해도 희미해지기만 한다.
딱히, 변수 같은 건 없었다. 굳이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면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 정도. 지독했던 여름이 어느새 뒤돌아갔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바람이 분다.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일교차가 제법 심하다. 감기 걸리기 정말 좋은 날씨다. 그래 나는 그냥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것뿐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 않던가. 정말 그렇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 며칠 앓고 나면 가벼워질 시간이 그런 병이다.
자주 걸리는 감기처럼, 나에게 우울증도 그렇다. 한번 걸렸다 나았다고 해도 언제든지 또 걸릴 수 있는,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 평생 함께 같이 가야 할 반갑지 않은 친구이다. 누군가는 소화 불량을 또 누군가는 환절기 비염을 달고 사는 것처럼, 나에게는 우울증이 그럴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울증을 '반려병'이라 칭하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 내 집 앞에 찾아온 새끼 고양이나 유기견처럼, 나는 너를 그렇게 대하려고 한다. 나를 찾아온 너를 굳이 쫓지 않고, 데리고 살아가면서 너와 가까워지려 한다.
이번에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바람에 준비를 하지 못했다. 곧 있으면 더 추운 계절이 올 텐데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월동 준비를 해나가야겠다. 더 이상 너 때문에 내 몸이 그리고 내 마음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뒹굴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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