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 인기가 예전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thutra0803 on Unsplash
2023년 8월 말에 30년 넘게 잡은 교편을 놓았다. 지방 소도시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주로 근무했다. 불타는 사명감에 충만하여 열정적으로 교직 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크게 욕을 먹지는 않았고 나도 교직 생활에 대체로 만족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사범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할 때 말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교직의 장점들을 강조하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사범 대학 진학을 부추겼다. 외동딸도 사범 대학에 진학하였다. 지금 중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 사범 대학 인기가 추락한 이유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현직 교사가 쓴 글인 듯했다. 네 가지 이유를 꼽고 있었다.
첫째, 취업 전망의 어두움, 둘째, 교사(교육 계열) 이외 다른 직업 찾기 어려움, 셋째, 보수 높지 않음, 넷째, 연금 수령액이 대폭 깎여 노후 안정성 사라지고 있음.
올바른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라는 의문이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교육 현장에서 본 사범 대학 인기 추락의 원인
사범 대학 인기가 추락한 또 다른 원인에 대해 곰곰 생각하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 대학 진학을 주저하기 시작하던 시기가 언제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대략 2016년 무렵인 듯싶다. 그즈음부터 나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사범 대학 진학을 권하지 않았던 듯하다. 오히려 사범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우수 학생들을 보면, 다시 한번 고민해 보라고 했다.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때부터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소위 말하는 '교실 붕괴' 현상이 본격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현상이 일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억을 돌이켜보니 그 당시 내가 참으로 답답하게 생각했던 현상이 또렷이 떠오른다. 공부를 곧잘 하는 학생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활동이 아니면 참여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때 내가 학생들한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이거 하면 생활기록부에 기록돼요?'였다.
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활동만 하고 공부는 학원에 가서 하는 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일반적 행태가 되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거나 자기에게 필요한 다른 과목 공부를 하거나 전날 밤늦게까지 이어진 학원 수업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잤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은 이미 수업 시간에 잠들어 있었는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마저 잠들기 시작하자 학교 수업 시간은 학생들의 꿀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가 이런 상황을 통제할 권한도 방법도 가지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이 크나큰 문제였다. 교사가 잠자는 학생을 깨웠을 때 학생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학생 몸을 흔들어 억지로 깨웠다간 그야말로 큰일이 난다.
왜 잠을 깨우냐고 눈만 흘기는 학생이 고마울 지경이다. 학교 폭력으로 신고한다고 위협하기도 하고 벌떡 일어나 교실 문 박차고 나가버리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도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대에 진학하려 하겠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교사가 되려고 하겠는가?
현직 교사가 분석한, 사범대 인가가 추락한 네 가지 이유 모두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있다. 그러나 그 네 가지 이유가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둔 학생들에게 직접 와닿지는 않을 듯하다.
학령 인구 감소로 교사를 많이 뽑지 않아 취업 전망이 어둡다고 했는데, 사범 대학이 인기가 있던 시절에도 취업 전망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보통 몇십 대 일이나 되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교사 이외의 다른 직업 찾기가 어렵다는 점 또한 사범 대학이 인기 있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사범 대학이 인기를 있던 시절에도 교사의 보수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는 데다가 보수가 박하다는 사실은 교사로 임용되어 월급을 받아봐야 실감할 일일 터이다. 그리고 연금이 대폭 깎여 노후 안정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은 실로 몇십 년 후의 일이 아닌가.
학생들이 두 눈으로 목격한 교실의 모습
그래서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대에 가려고 하지 않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이 교실 수업 현장에서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한, 교실 붕괴 현장에서의 교사들의 무기력한 모습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들이 생생하게 목격한 교사들의 무기력한 모습이, 교단에 섰을 때의 자신들의 모습에 그대로 오버랩되지 않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고 싶지는 않을 터이다. 특히 공부를 곧잘 하는 학생들이라면 여러 면에서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학생들이 교실 붕괴 현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는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 대학에 진학할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2016년 무렵부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 대학 진학을 꺼려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학생들에게 더 이상 사범 대학 진학을 권유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최근 사범 대학의 합격선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졌다. 요즈음은 '대학 어디가'라는 대입 정보 포털사이트를 통해 대학별, 전형별 합격선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지방 거점 국립대 합격선이 어느 정도인지 찾아보았다. 2024학년도 입학 전형 자료가 최신 자료였다. 그 대학의 수능 위주 전형(정시 전형)의 학과별 최종 등록자 70% 컷 백분위 평균은 다음과 같았다.
국어교육과 67.77%, 영어교육과 67.27%, 사회학과 66.67%, 심리학과 71.7%, 경제학과 71.13%, 행정학과 71.63%, 아동복지학과 71.17%, 국어국문학과 69.97%, 사학과 70.33%, 의예과 96.75%, 약학과 95.93%, 수의예과 95.4%
숫자가 100에 가까울수록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합격한 것인데, 참으로 놀라 자빠질 만한 입학 전형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처음에는 자료가 잘못 올라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었다. 상당한 공신력이 있는 그 사이트에서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그 지방 거점 국립대의 국어교육과 최종등록자의 수능 위주 전형 백분위 평균은 85%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학생들의 입시 지도를 직접 담당한 마지막 해가, 2019년이다. 위의 자료는, 그해 이후로 대학의 입학 전형 결과 자료를 찾아보지 않다가,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본 것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 지방 거점 국립대의 국어교육과 최종등록자의 수능 위주 전형 백분위 평균이 20%P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급전직하했다.
또 심리학과, 경제학과, 행정학과, 아동복지학과,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등의 합격자 백분위 평균이 국어교육과나 영어교육과의 그것보다 높다. 사범 대학이 인기가 있었던 시절에는 결코 벌어지지 않았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현상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우수한 교사가 있어야 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 대학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무기력한 교사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열정 넘치고 자신감 충만한 모습의 교사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주체적으로 제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지금 당장 고민하며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 특히 고등학교 교육은 설 자리를 잃고 끝없이 배회할 것이다. 사교육의 들러리로 완전히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라는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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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지방 소도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2년을 제외하고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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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학생의 사범대 진학, 내가 말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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