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데이비드 밀러 박사가 골령골 학살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밀러
필자는 2024년 6월 26일 몇 개월 만에 드디어 데이비드 밀러 박사(이하 밀러)를 만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전 골령골 학살지 옆 대전유족회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밀러와의 인연은 2020~2021년부터였다. 두 차례 대전위령제 참석했을 때 멀찌감치 관중석 뒤편에 서양인 한 명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저 서양인이 왜 우리나라 민간인학살 대전위령제에 참석했을까!' 궁금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 후 대전유족회장께 여쭤봤다. 회장님 그 서양인은 누구입니까?
"아이고! 밀러 박사 유! 밀러는 대전 동구청에 국제보좌관으로 근무하잖아유! 그리구유! 대전 골령골 추모관 건립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하고 있어유! "
그리고 2022년 6월에 진주 위령제 행사 때였다. 진주 유족 중 하종수씨가 필자 곁에 와서 잠시 보자고 한다. 종수씨는 관중석 뒤편에 서 있는 밀러 박사를 필자에게 소개하였다. 깜짝 놀랐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필자는 밀러에게 대전위령제 때 멀리서 몇 차례 뵌 적 있다고 했더니 아! 예스! 엄지손가락으로 굿! 한다.
종수씨를 잠시 소개하면, 그는 외삼촌이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당한 유족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여 미국에서 IT 관련회사에 근무했고 민간인 학살에 관심이 높아 밀러와 인연이 있다고 한다. 종수씨가 영어통역에 능통해 밀러에게 필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설명을 해주어 대화가 순조로웠다. 그래서 제 자료집을 두 권을 건네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필자에게 좋은 일 한다고 엄지손가락으로 굿! 굿! 하며 화답했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후 필자는 밀러가 한국의 민간인학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대전유족회 골령골 위령제 전야제 날 유족회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아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보니 골령골 1 학살지부터 6학살지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을 끼고 밀러가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옆에는 동양인 여자와 함께 골령골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 다릿돌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 소하천 사연은 대전유족회 사무실에서 우연히 대전시민 한 사람을 만나 듣게 되었다. 대화 중 자기가 중학교 때인 1987년도 대전에 대홍수가 났는데 소하천이 범람하여 골령골 유해들이 휩쓸러 내려가서 밭과 도로가 하얗게 유해로 뒤덮었다고 한다. 또 나머지 유해는 소하천을 따라 흘러 흘러 대전천에 합류되면서 홍명상가 앞 천이 떠내려온 유골로 하얗게 뒤덮어져 있는 것을 시민들이 목격하여 경찰서에 신고했다고 한다. 군인들이 대전천에 가림막을 설치하여 시민들이 보지 못하게 한 후 유해 수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작은 개울을 건너오는 밀러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온다. 인사를 나눈 뒤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사연을 듣기로 했다. 이제 그 사연을 펼쳐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