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대체: 30일 오후 8시 10분]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0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동일한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같은 날 1심에서 금고 3년의 유죄를 선고 받은 것과 대비된다. 재판부가 관할 경찰에겐 핼러윈 인파를 관리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고 본 반면, 관할 구청엔 의무도 권한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 구청장 무죄에 유가족들은 법정에서 "159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무죄냐"라며 통곡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 부장판사·김병일·백송이)는 이날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 직원 4명, 이 전 서장 등 용산서 경찰관 5명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사건 재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참사 발생 후 1년 11개월,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1년 8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2개월 뒤인 2022년 12월 경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후 각각 지난해 6월·7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아왔다.
용산경찰 책임 인정한 법원… "자연재해 아닌 인재"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의 유무죄가 엇갈린 이유는 재판부가 인파 사고를 대비할 의무와 이를 조처할 권한이 경찰엔 있고 구청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022년 핼러윈은 3년 만에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돼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 선고에서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임무가 있다"라며 "축제를 맞아 수많은 군중이 경사진 좁은 골목길 등 공간에 운집해 혼잡이 예상되는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관, 특히 축제에서 혼잡 상황에 대비한 치안유지라는 구체적 임무까지 부여된 경찰관의 지위에서, 대규모 인명 사상이라는 대형 참사의 결과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공간에 군중의 밀집으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사고, 즉 전도·추락·압사 등의 안전사고라는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 전 서장 등이 항변해온 것처럼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를 정확히 예지하진 못했더라도, 사고 발생 가능성은 예견할 수 있었기에 경비 대책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재판부는 "참사 당일 오후 6시 34분경부터는 사고 장소 부근에서 압사의 위험 및 인원 통제를 요청하는 112 신고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었음에도 112 자서망 무전기(교선용 무선망)를 제대로 청취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대처했다"라며 "마약류 범죄 단속과 교통 단속에만 치중했을 뿐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안전사고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았고, 사고 당일 혼잡 경비와 정보 경력 전원을 집회·시위 현장에만 배치했다"고 했다. 참사 당일 오후 8시 33분께까지 진행된 용산 대통령실 앞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언급한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불과 1400미터 떨어져있는데, 이곳엔 경찰 기동대 67개가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112로 압사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던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엔 경찰 기동대가 하나도 없었다. 이태원 참사는 오후 10시 16분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태원 참사는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주의의무를 다하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라면서 경찰관들의 책임을 물었다. 이 부분은 오는 10월 17일 선고가 예정된 '윗선'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이 상급자인 김 전 청장에게 경찰 기동대 요청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이 일었던 부분에 대해선 " 핼러윈 데이를 맞아 용산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에 교통기동대 지원 요청을 한 것 외에 경비기동대까지 지원 요청하였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다"고 명시했다.
금고 3년형을 받은 이 전 서장은 재판부가 보석상태를 유지해 주면서 법정 구속되진 않았다. 이 전 서장과 함께 기소된 송병주 전 용산서 112 상황실장은 금고 2년, 박인혁 전 112상황실 3팀장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참사 후 이 전 서장의 현장 도착 시간을 실제보다 40여 분 앞당겨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던 최용원 전 생활안전과 경위와 정현우 전 여성청소년과장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