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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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은 시조를 많이 짓기도 했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정립한 선각이다. <가람시조집>에 72편, <가람문선>에 43편, 이외에도 많은 시조를 남겼다.
이와 함께 시조를 연구한 논문 여러 편을 썼다. 첫 작품이 1926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조란 무엇인가?>를 필두로 이어졌다. 주요 논문의 출처를 살펴본다.
시조란 무엇인가 <동아일보>, 1926
율격(律格)과 시조 <동아일보>, 1928
시조와 그 연구 <학생>, 1928
시조의 현재와 장래 <신생(新生)>, 1929
시조원류론 <신생>, 1929
시조는 혁신하자 <동아일보>, 1932
시조의 발생과 가곡과의 구분 <진단학보>, 1934
시조의 기원과 그 형태 <동아일보>, 1934
송강가사의 연구 <진단학보>, 1936
시조의 감상과 작법 <삼천리>, 1936
시와 시조 <시학>, 1938
한시 절구(絶句)와 시조와의 관계 <조선일보>, 1939
시조감상법 <조선일보>, 1939
고금시조의 형태 <반도사화(半島史話)와 악사만연(樂士滿淵)>, 1942
민요와 시조 <조선일보>, 1949
역대시조의 몇몇 작품 <시조연구>, 1953
시조의 혁신 <학도주보>, 1956
시조창작론 <일석 이희승선생화갑기념논문집>, 1957
시조창작과 창 <현대>, 1957. (주석 1)
1928년에 쓴 <시조와 그 연구>는 1. 시조에 대하여 오해하지 마시오. 2. 명칭과 그 유래. 3. 의미와 운율. 4. 가곡의 명칭과 시조의 종류. 5. 창법. 7. 수사학적으로 보는 것. 8. 다른 가용과의 비교 등으로 구성되었다.
1936년에 쓴 <시조의 감상과 작법>은 1. 감상. 2. 작법으로 구성되고, 1929년의 <시조원류론>은 1. 노래의 기원과 어원. 2. 노래와 시조의 형식. 3. 시조발달의 과정 등으로 짜여 있다. 시조의 어원에서 작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담았다.
1926년 <동아일보>를 통해서 발표된 <시조란 무엇인가?>이다. 이 글은 시조의 명칭과 종류에서 시작하여 자수·구조·체제·유래·낭송법·수사법·신 운동을 차례로 거론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지나쳐 볼 수 없는 것이 가람의 시조 선택론이다.
벨 하렝은 시의 형식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라 하였으며 괴테는 시의 법칙을 자기가 지을 것이라 하였다. 이런 대시인의 말과 같이 시인의 사상·감정은 무엇에든지 구속받은 것이 아니다. 자유다. 이 의미에서 이 근래의 자유시 곧 신시운동이 생기지 아니하였던가. 그러면 신시를 지을 것이지 시조를 왜 짓느냐 하는 문제가 또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말과 같이 자기가 선택하든지 자각하든지 하여 보아 시조의 형식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시조를 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신시 혹은 민요·동요 대세의 어느 것이든지 취할 것이다. (가람의 글 인용)
가람의 이런 생각은 초기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한 육영이나 춘원, 위당 등의 생각과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 (주석 2)
가람은 1925년 10월 <조선문단> 12월호에 처음으로 몇 편의 시조를 발표하였다. <한강을 건너며> 등이다.
한강을 건너며
어머니 가시든 날이 오늘만 같았으면
저 좋은 달 아래서 아 강을 건너시렸만
그 밤은 모진 물결에 등불조차 없었노라.
일제의 식민통치가 극점으로 치닫던 1939년『가람시조집』에 실린「봄 2」이다. 화창한 봄날, 사라진 왕조의 그늘진 궁궐을 읊는다.
봄날 궁궐 안은 고요도 고요하다
어원 넓은 언덕 버들은 푸르르고
소복한 궁인은 홀로 하염없이 거닐니라
석은 고목 아래 전각은 비어있고
파란 봇물 우에 비오리 한 자웅이
온 종일 서로 따르며 한가로이 떠돈다. (주석 3)
가람은 시조의 형태는 정형(定型)이 아니라 정형(整型)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정해진 틀에 매일 것이 아니라 형태는 지키돼 자유롭게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조의 형식 내지 형태를 좀 더 자유스러운 것으로 보고 그 성공과 실패가 전적으로 작가의 기법에 달린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에 바로 정형론(整型論)의 성립 근거가 있는 셈이다. 또한 가람은 정형으로서 시조가 새롭게 부흥되어 일반 대중의 호응을 얻는 길이 혁신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당시로 보아서는 전무후무한 시조창작론이라고 할 <시조는 혁신하자>가 작성·발표되었다. (주석 4)
가람은 좋은 시조를 위해서 우리말의 효과적인 사용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본 분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에 재래의 말들을 되살려 쓰는 일이 있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시조부흥의 전제가 말의 전통에 대한 감각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던 경우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이와 같은 주장을 내세운 가람의 의식 문제다. (주석 5)
국문학자 조윤제는 <현대문감(現代文鑑)>의 <시조> 부문에서 이은상과 이병기 두 사람을 선정하고 가람의 경우 <난초>와 <소기> 그리고 <저무는 가을>을 대표작으로 뽑았다.
저무는 가을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즉이네
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
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무배추 밭머리에 바구니 던져두고
젖 먹는 어린아이 앉고 앉은 어미마음
늦가을 저문 날에도 바쁠줄을 모르네. (주석 6)
주석
1> 최승범, 앞의 책, 146~147쪽.
2> 김용직, <한국근대시사(하)>, 378~379쪽, 학연사, 1986.
3> <가람시조선>, 87쪽.
4> 김용직, 앞의 책, 383~384쪽.
5> 앞의 책, 385~386쪽.
6> 조윤제, <현대문학>, 59~60쪽, 동국문화사,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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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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