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이승환
- 먼저 이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후배세대에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나라 중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고인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삶을 내던진 고난 속에서 얻어진 것이라는 점을 절절이 호소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미 세상을 뜬 지 30년이 지난 이범영은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명망가도 아니고 세상을 뒤흔든 대사건의 주역도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정리해봄으로써, 민주화운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모욕당하고 있다고 느낄 만큼 암울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 이 책을 다섯 분이 공저를 했는데 그 이유는?
"다섯 사람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된 것은 무엇보다 처음에 집필자로 지목받은 내가 시민운동과 통일운동으로 바쁘다는 핑계와 게으름으로 작업을 진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는 고인 30주기를 넘기지 말고 반드시 책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의무감을 내세워 여러 선후배들에게 부담을 떠넘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세대 민청련운동의 증인이자 고인의 농법회 직속후배인 권형택, 고인에게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운동과 북한이해에 큰 영향을 준 역사학자 한홍구, 한청협 집행부의 중심적 역학을 했던 이원영, 한청협 운동으로 박사논문을 썼던 이창언, 그리고 고인과 청년운동‧통일운동 등의 운동적 고민과 실천궤적을 함께 했던 이승환 등 5명의 필자는 이 책 작업에서 나름 최상의 조합이었다.
이 조합으로 이범영 약전 권형택, 청년운동사 이원영, 운동사상에 이승환과 이창언, 평가 한홍구, 전체수정과 조정 이승환 등으로 쉽게 평전집필의 역할분담이 가능했고, 각자 맡은 부분에 누구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 이 책이 주로 고인의 민주화운동과 사상에 중점을 둔 이유는?
"고인의 운동과 사상 흐름을 통해 1980-9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나아가 그 시대자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30년 후의 시점에서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고인을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됐나. 그가 삶에 미친 영향은?
"내가 고인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고대 1학년이던 76년 10월 하순경 농업문제를 공부하는 학교간 연합 공부모임에서였다. 이 공부모임은 아마도 서울대 농법회가 중심이 되었던 일종의 범대학적 서클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서클에서 나는 당시 서울대 4학년이던 고인을 처음 만났다. 그 모임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그가 76년 서울대 12.8 유신반대 데모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졸업을 두 달 앞두고 구속된 고인의 투쟁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후 나도 78년에 유신반대 학생시위로 구속되었지만, 출소는 79년 그와 비슷한 시기에 했다.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고인과 나는 80년 병역문제대책위를 거쳐 82년부터 서울대와 고대 등 학생운동의 대학간 연대활동, 그리고 민청련과 한청협 활동 등 그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선후배이자 동지로서 거의 동일한 운동적 궤적을 공유해왔다.
민청련 내 유명한 논쟁이던 소위 사회구성체 논쟁과 조직논쟁에서도 우리는 대부분 같은 입장을 가졌고, 노동운동과 청년운동의 결합이나 통일운동 방향을 비롯한 대부분의 운동적 고민에서 비슷한 입장을 공유했다. 그래서 그가 죽은 이후에도 나는 새로운 통일운동체 논쟁, 합법정당 논쟁 등 운동적 논란은 물론이고 운동과 생활 등 개인적 고비를 맞을 때마다 '이때 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나의 진로를 결정했을 만큼 그는 실천적으로 나의 삶과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