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실과 김수업왼쪽이 한실 님, 오른쪽은 '배달말집'을 만들고자 뜻을 세운 빗방울 님 (전 우리말 대학원장 김수업 교수), 빗방울 님은 2018년 6월, 말집(사전)을 만드는 도중에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영상 갈무리
주중식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어요. 푸른누리엔 벌써 서리가 내렸고요. 호박잎이랑 고구마잎은 데쳐놓은 꼴이 됐어요. 몇 가지 여쭤보고 싶어 글월 드립니다. '안전하다', '위험하다', '영향을 끼(미)치다' '덕(분)', '공덕'을 갈음할 알맞은 겨레말이 있을까요? 외솔 님은 영향을 '끼침'이라고 바꿔놓으셨는데 영향을 끼(미)치다 까지 말하려면 잘 안되어요. '방', '문', '병'과 '약', '죄'와 '벌'을 뜻하는 겨레말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많은 말들처럼 한자말에 밀려 사라져 갔을까요? 좋은 가르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2014.10.17. 한실 님이 보낸 번개글(이메일)
내가 한실 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4년 5월의 일이다. 한실 님은 그 무렵, 빗방울이라는 덧이름(호)를 쓰며 우리말 살리기와 고장 삶꽃(지역 문화) 살림이로 삶을 바친 김수업 교수님을 만나게 되는 데 빗방울 님은 '우리말을 살리고 가꾸어 서로 뜻을 쉽고 바르게 주고받고 겨레말 속살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풀이한 책을 짓는 것'을 큰 과녁으로 골잘 최인호, 날개 안상수, 들꽃 주중식, 마주 박문희, 한꽃 이윤옥, 한실 최석진과 함께 우리말 '세움이'가 되어 "배달말집"을 짓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들은 낱말 하나라도 모으기 위해 번개글로 서로의 뜻을 나누고, 그리고 많은 모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함께 하는 이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말집 만들기에 한 걸음씩 다가섰다. 그대로만 가면 곧 말집을 만들 수도 있다는 부푼 꿈도 꿨다. 그러나 2018년 6월, 겨레말 살리는 이들을 이끌던 빗방울 김수업 님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우리의 일은 잠시 멈춰서야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 때에 선장이 숨을 거둔 격이었다.
하지만 한실 님의 활약은 이 시기에 더욱 빛났다. 빗방울 님이 돌아가시자 한실과 모둠살이(지역공동체) '푸른누리'에서 뜻을 이어받아 여섯 해 동안 책을 펴내려고 우리말을 찾아 모으고 다듬었다. 책은 나날삶에서 마땅한 듯 쓰이는 한자말과 서양말에 가려져 잊힌 우리말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풀이를 우리말로 쓰고, 새롭게 들온 말을 우리말로 바꾼 새말을 실었다.
지은이 한실은 말한다. "이 말집 어느 쪽을 펼치더라도 구슬 같고 깨알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만나게" 된다고 말이다. 구슬을 함께 꿴 이들은 나무 님, 높나무 님, 별밭 님, 아침고요 님, 살구 님, 고르 님, 달개비 님, 아무별 님, 보배 님, 아라 님, 쑥부쟁이 님, 소나무 님, 시냇물 님, 숲길 님, 숲노래 님, 채움 님, 미르 님, 윤슬 님, 미리내 님이 그들이다.
그렇게 해서 어제 <푸른배달말집>은 책 잔치상에 올랐다. 처음 뜻을 세운 지 11해 만에 거둔 값진 열매다. 대강당을 가득 메운 이들은 1,560쪽의 말집이 누리에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힘찬 손뼉을 쳤다. 그리고 모두의 일처럼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