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정작 자녀들의 얼굴을 볼 겨를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픽셀
하지만 '성공적인 자녀의 미래'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부모와 자녀의 삶은 더 팍팍해짐을 본다. 좋은 학군을 위해서라면 수억 원의 대출도 마다하지 않고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부모의 능력이자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비친다.
비싼 학원비를 벌기 위해 부모는 투잡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는 굶어도 되지만, 자식은 어떻게든 좋은 것을 먹인다. 학원뺑뺑이와 선행학습에 익숙해진 아이들 또한 부모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
마치 가족 전체가 암묵적인 합의를 한 것 같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듯이, 힘든 학업의 과정을 거치면 의대와 전문직이라는 다디단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30년만 눈 딱 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도록 공부하면 남부럽지 않은
연봉과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렇게 해서 힘들게 목적지에 도달한 자녀는 과연 행복할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육아휴직 이후 복직을 하며 연고지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5개월 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난생처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하루에 5분 영상통화를 하고 주말에 잠깐 가족을 보는 삶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예전처럼 딸아이가 수학 문제를 몇 개 틀렸는지, 오늘 하루 핸드폰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같은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대신 두 자녀가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비록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지만 멀리 있는 아빠를 응원하는 자녀들로 인해 객지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