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를 위한 채용공고 게시대9월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강남구 행복 일자리박람회에 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실업자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올해 8월 기준, 고용률은 역대 최고인 63.2%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1.9%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특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실업률 1.9%는 사실상 전국민 고용 시대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완전고용 경제에 진입한 미국의 실업률(4.1%)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실업률이 얼마나 엄청난 수준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성과가 지표에 반영되고 있다고 자평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는 상황인식과는 괴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반값에 노동을 공급하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뉴노멀'로 정착하면서 질 낮은 일자리 증가가 실업률 하락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주당 1시간'만 일해도, 아버지 가계 일을 '무급'으로 도와줘도 취업자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시장주의 이념에 중독된 노동개혁 정책이 비정규직의 시장 지배력을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구직단념자, 불완전고용에 노출된 청년세대, 비정규직 임금격차 등 역대급 최저 실업률 이면에 가려진 구조적 문제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노동개혁에 무너진 고용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실업률 1.9%'가 휴지 조각에 불과한 이유
실업률 지표가 고물가·고금리 충격 등 내수 불황의 역풍을 뚫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1%대 진입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완전고용을 넘어 실업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전국민이 일하는 초(初) 자연실업(natural rate of unemployment)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실업률이 유독 경제지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유를 살펴보자.
첫 번째 주범은 '주당 1시간'만 일해도 다 취업자가 되는 불합리한 기준을 들 수 있다. 실업자를 실업자로 부르기 어렵게 만드는 엉터리 기준이다. 물론, 한 주에 1시간만 일하면 취업자로 간주하는 ILO(국제노동기구)의 권고에 부합하기 때문에, 통계적 오류나 조작으로 볼 수는 없다. 권고는 그저 권고일뿐인데, 우리나라 노동 환경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격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업자 근로시간 기준을 우리 현실에 맞게 바로 세우는 것이다. 미국도 ILO 권고를 따르고 있지만, 실업자 기준을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엄격하게 분류해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 지표가 통화 및 재정 정책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핵심 경제지표로 활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실업률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처한 실업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내수가 불황인데 고용이 활황이라면, 실업률 지표는 사실상 죽은 지표나 마찬가지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은 -0.2%(전분기대비)로 역성장했고, 가계실질소득은 몇 년간 제로성장의 사선을 넘나들고 있으며, 자영업자 코로나부채는 잠재부실이 현실화되는 구간에 진입했다. 또한 '부자 뺀 건전재정'의 여파로 나라 곳간이 거덜나 민생 확대재정 여력이 소진되고,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소비 부진이 내수불황으로 이어지는 민생대란 사태에 직면해 있다. 실업률 지표로는 도저히 지금의 경제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는 이유다.
주당 15시간 미만(하루 평균 3시간)인 초단시간 일자리는 사실상 실업자로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실업자 기준을 '주당 15시간 미만'(초단시간 근로)으로 엄격하게 규정해 실업률을 재산정해 보자. 올해 7월 기준 초단시간 근로자는 약 180만 명 정도인데, 이 중에서 절반인 90만 명이 일자리가 없어 비자발적으로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실업자는 73만 7000명에서 163만 7000명으로 늘어나고, 실업률은 1.9%에서 5.5%까지 3배 가까이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사상 최저 실업률은 전국민 고용이 가능한 '주당 1시간 근로' 기준으로 인해 실업자가 취업자로 분류되는 착시일 뿐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36시간 미만의 단기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36시간 미만의 단기 근로자 비중(취업자 대비)
: '22년(28.6%, 803만명) ⟶ '23년 23.9%(680만) ⟶ '24년 8월(54.6%, 1,572만)
두 번째 문제는 고용 통계상 비임금근로자로 분류되는 '무급가족종사자'가 실업률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급가족종사자가 가족이 운영하는 업체나 가계에서 무보수로 '주당 18시간' 이상을 일하게 되면, 취업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가족 업체에서 일하는 무급 종사자는 엄밀히 따지면 실업자에 가깝다. 올해 8월 기준, 무급가족종사자는 91만 2000명으로 전체 실업자인 56만 4000명보다도 많다. 만약, 무급가족종사자를 실업자로 분류하면, 실업률 수치는 현재 1.9%에서 4.9%로 2배 이상 올라가게 된다.
물론, 미국의 BLS(노동통계국)도 무급가족종사자를 취업자로 분류하지만, 이 기준이 실업률 지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은 산업에서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가족 업체든 뭐든 무보수로 일하는 근로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무급으로 일하는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세 번째 문제는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져나가는 '구직단념자'가 늘어 실업률이 낮아지는 착시 현상이다. 일할 의사가 없어서 그냥 쉬고 있는 사람들이 실업자 통계에서 빠져나가 버리면, 실업률이 낮아지는 착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역대 최저 수준인 4.1%까지 떨어진 청년실업률이 이에 속한다. 구직을 포기한 청년(15~29세) 취포자는 2023년말 36만 6000명에서 올해 8월 46만 명으로 9만 4000명 증가했다. '쉬었음'에서 '청년 쉬었음'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15.6%에서 17.9%로 증가한 상태다. 이처럼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게 되면, 청년실업률이 떨어졌다 해도 다가올 고용 한파를 피하기 어렵다.
▲ 청년(15~29세) 쉬었음 및 전체쉬었음 차지 비중
: '22년(40.6만, 16.4%) ⟶ '23년(36.6만, 15.6%) ⟶ '24년 8월(46만명, 17.9%)
정리하자면, 내수가 불황인데 실업률이 역대 최저를 찍을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질 낮은 불완전고용(under-employment)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거나, 그것도 아니면 노동시장을 떠나는 구직단념자(쉬었음)가 늘어 실업률 공식의 분자가 가벼워지는 경우일 것이다.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뉴노멀로 정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