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입고돼 진열되고 있다.
연합뉴스
알려졌다시피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7년부터 1954년 사이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을 다루고 있다. 모두 대한민국의 변방에서 일어난 일들이자, 우리들조차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사건들이다.
한강 작가가 처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1980년대 초, 한 작가의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 온 학살 피해자들의 사진첩을 어린 그가 우연히 들쳐 봤던 것.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중
그는 훗날 어느 인터뷰에서 이 일을 두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도 했는데, 그 근원적 질문을 아주 오래 품고 있던 작가는 마흔이 넘어서야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썼다.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학생 '동호'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
어느덧 30년도 더 지나 저 남쪽 끄트머리 어느 변방에 멈춰 있던 시간은 그의 아름다운 글과 이야기로 되살아나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책이 세상에 나온 뒤에도 작가는 오래 열병을 앓은 걸로 보인다. 이번엔 그가 차마 외면할 수 없던, 군인과 경찰 그리고 국가가 길러낸 폭력조직인 서북청년단 등이 저지른 또 하나의 거대한 학살극이 그를 덮쳐왔다. 혼란스럽던 해방정국의 제주에선 광주에서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더 오랫동안, 더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때 알았다.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거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 때까지.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엔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작별하지 않는다> '1.결정' 중
그는 다시 더 먼 변방으로 향했고, 한참을 매달린 끝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썼다. 그는 이 책 '작가의 말'에 "2014년 6월에 이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썼다"고 했는데, <소년이 온다>가 세상에 나온 바로 다음 달이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이어서 쓸 수 있었고, 다시 삼 년이 지난 2021년 비로소 이야기를 매듭지을 수 있었으니, 아마도 그는 첫 두 페이지를 쓴 그날로부터 7년간 한순간도 변방을 온전히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바다 건너 제주의 어느 동굴 속에선가, 또 어느 땅속에선가 그대로 멈춰 있을 그날의 시간도 다시금 흐르게 될까. 꼭 그렇게 되길 빈다.
우리 안의 변방을 넘어설 기회로 삼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