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시골살이가 한결 멋있다

[갑이네 시골살이 26] 벗을 맞이하는 반가움과 기쁨

등록 2024.10.15 08:29수정 2024.10.1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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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공자의 <논어> 첫 장, 두 번째 구절이다. 어찌 성인만 그렇겠는가? 필부인 나 역시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기쁘고 반가운 마음에 하루가 설렌다.


이처럼 성인에서부터 필부에 이르기까지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 벗은 어떤 존재인가? 벗을 한자로 '친구(親舊)'라고 한다. 오륜의 첫 번째 항목인 '부자유친(父子有親)'이란 말에도 '친(親)'이 있다. '어버이와 자식은 친함이 있다'라고 해석하는데 친하다는 뜻이 또렷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친함이란 무엇인가? '친(親)'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나타낼 때 쓴다. '어버이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주었기에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라고 읽어야 한다. 친구란 글자 그대로 오래되어 얽히고설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까칠한 나는 벗의 뜻매김을 더 좁힌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벗은 이런 관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두 가지를 전제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뜻매김 한다.

이런 벗이 멀리서 찾아오는데 어찌 반갑고 기쁘지 않겠는가? 오늘 찾아오는 벗들은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은 나와 비슷하지만, 힘없고 약한 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내가 그들에게 늘 배워야 한다. 그러하기에 그동안 묵혀 놓았던 생각들을, 쌓아 두었던 정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냥 듣고 말하면 된다. 빈말이나 입에 말린 말이 필요 없다. 그러니 벗을 만나면 그냥 반갑고, 좋고, 기쁘다.

나는 퇴임 후 고향 부산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김천 산골, 오지라고 불리는 곳에 살고 있다. 부산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3시간이 걸린다. 벗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1박 2일로 찾아온다. 올해는 인천에서도 온다. 오늘 찾아오는 벗들은 자기의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내어준 것이다. 나의 시골살이에 대한 호기심에서, 나와 인연에 대한 예의 또는 의무감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만나지 못하였기에 그냥 나를 보러 온다.


오늘 찾아오는 벗들과는 선후배 교사로 연결된 하나의 친목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몇 년 전 나하고 잘 지내던 선배 교사 한 분이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후배 교사가 찾아와 퇴임하고 나면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이 기회에 모임을 만들었으면 하는데 어떻냐라고 묻는다. 너무 뜻밖이었다. 평소 선후배로 잘 지내고 있었지만, 직장을 떠났는데도 인간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하니, 나로서는 고맙고 고마웠다.

선배에게 이야기하니 그렇게 하여 주면 더없이 고맙다고 한다. 그렇게 모임이 만들어졌다. 나이는 위와 아래로 24살 차이가 있다. 내가 둘째이다. 첫째와는 2살 차이, 셋째와는 7살 차이가 있다. 그런데 모임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인품과 태도는 내가 아직 따를 수 없었다. 욕심을 비워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그들의 곁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쉬이 비워지지 않았다. 또 욕심이 도진다.


선배 교사는 후배 교사들에게 너그러웠고, 관리자에게는 옳고 그름이 분명하였다. 선배가 퇴임하던 날 학교에서 주는 공로패에 형식적인 내용이 담기는 것이 싫어서 몇 명의 후배들과 뜻을 모아 평소 선배의 모습을 공로패에 담았다.

당신은 물이었습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며 움푹 팬 곳을 덮어주며
우리와 함께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무였습니다.
뜨거운 햇살이 비칠 때
우리가 쉴 수 있는 큰 나무였습니다.

당신이 흘러갔던 그 물길이
당신이 만들었던 그 그늘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물이고 나무가 되고자 합니다.

그렇게 모임이 지속되는 어느날 페이스북에서 후배 교사의 글을 보았다.

그 후배는 함께 다니는 학교를 옮겨 모 사립 고등학교에서 7년 동안 교감을 하고 있었다. 교장 면접을 앞둔 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교장을 포기하고 평교사로 돌아갔다.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지만,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는 듯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뒤 그 사연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첫째, 나는 과연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교육자인가?
둘째, 나는 과연 우리 학교의 위상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할 만한 역량을 갖춘 관리자인가?
셋째, 이 상태로 우리 학교 교육의 최고, 최후 책임자인 교장이 된다면 현재 내가 고민하고 아파하는 문제를 소명감을 갖고 해결할 자신이 있는가?

수없이 많은 번뇌와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마지막까지 고민한 끝에 이 물음에 스스로 당당하게 답할 자신이 없어 면접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글을 보자마자 바로 전화하여, '니, 나하고 이제 친구 하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전화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한참 묵혀두었다. 그해 여름, 그 벗이 부산에 왔을 때 만나 말했다. '니, 내하고 친구 하자'.

힘든 상황에 있는 벗을 보면 바로 달려가는 의리파 후배, 맑고 깨끗한 인품과 능력 그리고 신뢰를 아울러 가지고 있는 후배, 이성과 감성이 잘 어울리는 인품을 지니고 있지만 약한 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몸으로도 막아서는 후배, 어렵고 힘든 일을 보면 말없이 앞에 나서며, 이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후배.

벗들이 오는 주말 저녁 시간, 도착하기 전부터 시계를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른다. 벗들이 도착할 시간에 대문 밖에 나가 기다렸다. 얼굴이 보니 그냥 반갑고 기뻤다. 저녁을 집에서 간단히 먹고, 가까이 있는 자연휴양림에서 회포를 풀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이야기가 길어졌다.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이들을 벗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이들에게 과감히 이제 '서로 벗 하자'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이 때문인지 쉽사리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내 속마음을 보여 주었으니 그들 또한 내 마음을 알 것이다. 이제 우리의 만남은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 아니라 친한 벗의 어울림이 될 것이다.

수도암 일출 3주만 기다리면 가야산 연화봉 위로 해가 떠오르는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도암 일출3주만 기다리면 가야산 연화봉 위로 해가 떠오르는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다.정호갑

다음날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수도암으로 갔다. 고작 3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모두 한결같이 몸이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고 한다. 공기가 너무 좋다면 연신 숨을 내쉬고 들어 마신다. 이제 벗이 되었음을 축하를 해주는지 해가 눈부시게 떠올랐다. 산속의 여명과 맑은 공기 그리고 펼쳐진 산의 풍광에 모두 흡족해한다.

자작나무 숲 국립 김천 치유의 숲에 있는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숲국립 김천 치유의 숲에 있는 자작나무 숲.정호갑

내려오는 길에 수도암 곁에 있는 치유의 숲을 찾았다. 자작나무 숲을 거닐면서도 벗들은 맑은 공기와 숲의 향이 너무 좋다며 한껏 숨을 내쉬고 내뱉으면서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내려오는 길에 무흘구곡의 용추폭포와 와룡암을 보고, 마지막으로 청암사에 들렀다. 가을의 향과 색을 맛본다. 벗과 함께하는 기쁨도 맛본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시골살이가 한결 멋있다.
#벗이찾아옴 #수도암 #김천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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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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