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당근마켓 프로필 캡처 사진. 현재 매너온도는 51.5도다.
신민주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은 부엌과 방이 분리되지 않은 좁은 원룸이었다. 층간소음이 심해 이게 내 방인지 내 옆집 사람의 방인지 헷갈렸던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4년을 살았다. 살면서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만, 층간소음 외에는 그렇게까지 힘든 점은 없었다. 어느 날 음식 냄새를 맡지 않고 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작은 충동은 너무 크게 부풀어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됐다.
보이는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집어넣던 취업준비생 때처럼, 보이는 모든 주택 청약에 서류를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가가 땅을 빌려주고 민간이 주택을 지어서 만든 '사회주택'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이후에는 모든 사회주택에도 입주 지원 서류를 집어넣었다. 아주 운이 좋게, 서류를 넣은 사회주택 중 하나에 붙었다. 당시 살던 곳과는 먼 경기도에 있긴 했지만 거실과 주방이 있고, 방이 두 개나 있지만 시세보다 꽤 저렴한, 그런 판타지같은 집이었다. 더 볼 것도 없이 그 집으로 계약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문제는 내가 가진 모든 살림살이가 딱 다섯 평짜리 원룸 수준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삿짐 박스 안에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넣자 딱 여덟 상자가 나왔다. 옷장도, 침대도, 식탁도, 책장도 없었다. 뒤늦게 새집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어떻게 장만할지 고민했다. 모조리 다 사자니 돈이 아까웠고, 그렇다고 아주 조잡한 것들로 집을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새것 같은 헌 것으로 집을 채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중고 물품 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사 예정인 집에 살고있는 세입자에게 혹시 버리거나 팔고 싶은 가구가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전 세입자에게 커튼과 협탁과 소파와 책장을 샀고, 당근마켓으로 의자와 식탁과 청소기 등 아주 많은 것을 샀다. 유일하게 우리 집에 새것으로 된 것은 옷장인데, 그건 옷장을 사기로 한 이사 당일 거래가 불발되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새것이라곤 옷장밖에 없는 집이 완성되었다. 다 헌 것들뿐인데, 꽤나 그럴싸해보였다.
그동안 당근마켓 매너온도가 50도가 됐다. 매너온도는 거래한 사용자들이 해당 거래가 괜찮은 경험을 남겼는지 토대로 보내는 후기에 좌우된다. 사기를 치거나 아주 비매너적인 태도로 거래하는 사용자들은 많지 않기에 보통은 그냥 거래를 많이 하면 온도가 오르게 된다. 50도의 온도는 대략적으로 100개 정도의 물건을 거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주변에 새 집을 자랑하면서, 매너온도와 그럴싸해보이는 우리집 헌 것들에 대해서도 자랑했다. 내 주변엔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 나의 현명한 결정에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똑같이 자랑을 했는데 건너편 사람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자격지심의 몫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긴 했겠지만,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 그 표정을 읽은 후 나는 조금 외로워졌다.
내 삶은 정말 구질구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