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한강 작가의 책
박영호
공교롭게도 작가와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 1989년의 대학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5월이 되자 하루가 멀다고 집회가 열리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학교에 가까워지면 매개한 최루탄 냄새가 났다. 교문을 막아선 전경을 향해 깨진 보도블록을 던져보기도 했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 어느 날 학생회관에서 5.18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어려운 작은 브라운관 티브이에 흑백 영상이었지만 마치 핵폭탄의 섬광처럼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그날 교련복을 입고 쓰러진 소년을 본 듯도 하다. 처음으로 마주한 5.18의 참상은 믿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자료를 찾게 되었다. 황석영 작가가 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도 그 시절에 읽었다. 출세를 위해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과 노태우가 번갈아 대통령을 하는 나라를 사랑하긴 힘들었다. 태극기와 애국가를 멀리하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학교 안으로 들어와 학생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경찰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학생이 모였는데 누군가 분신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는 달라도 같은 사범대라 안면이 있는 친구여서 매우 놀랐다. 훗날 아주 우연히 먼발치에서 그날 입은 상처로 고운 얼굴을 잃어버린 친구를 보았다. 정의감도 용기도 부족했던 나는 그 친구에게 빚졌다고 생각했다. 김남주 시인에게도 부끄러웠다.
앉아서 기다리는 자여 /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 엉거주춤 똥 누는 폼으로 / 새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여 / 아리랑 고개에다 물찌똥 싸놓고 / 쉬파리 오기를 기다리는 자여
그날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운동권 학생을 탓하는 이는 없었다. 속내가 다르더라도 함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이제 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느낌이다. 5.18을 폭도가 일으킨 사태로 왜곡하고 나만 출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정의와 담쌓고 살아온 자들이 이제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는다.
한강 작가 열풍이 불고 있다. 노벨문학상 때문에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는 백만 부도 부족하다. 천만도 부족하다. 대한민국 모든 이가 읽어야 한다. 교과서에도 실어서 정의를 모르는 자들이, 아니 어쩌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자들이 작가란 이름을 달고 설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육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나는 무신론자다. 천수를 누리고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죽어 버린 전두환과 노태우를 보면서 신의 존재를 더 부정하게 된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였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태극기는 별 달고 시민을 죽인 군부독재 일당이 아니라 광주에서 죽어간 시민에게 바쳐야 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신을 믿는 자들이 벌이는 살육을 보면서 생각한다. 5월 광주는 되풀이된다. 역사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목적을 이루려는 자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5.18도 4.3도 진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바로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 작가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는 까닭이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201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나이 든 사람에겐 편안함을, 친구에게는 믿음을, 젊은이에겐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