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 불립니다. 1987년 헌법개정을 통해 법률이나 국가 공권력의 작용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는, 국민 기본권 보호의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6년간 유남석·이종석 소장을 거치며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결정을 내려왔습니다. 과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한 결정이었을까요? 202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는 소장을 포함한 3명의 재판관이 교체됩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을 선정해 〈2019~2024 헌법재판소 특집 판결비평〉을 진행합니다. 변화의 시기, 과거 결정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헌법재판소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대를 담아봅니다. [기자말] |
세 번째 특집 판결비평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관련 기후소송"에 대해 다룹니다. 아기·청소년 등 미래세대가 청구한,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데요. 헌재는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점은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면서도, 2030년까지의 목표량 자체에 대해서 엄격하게 심사하지 않았고 헌법위반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아쉬움 남는 헌재의 결정, 이재희 국립공주대 교수가 비평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종석(소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2024.8.29. 선고 2020헌마389등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미래세대의 기후소송 시작
2020년 청소년 환경단체 회원들의 청구를 시작으로 네 건의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되었다. 청구인들에는 청구 당시 출생하지 않은 태아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청소년들이 처음 제기하였고, 출생 전 태아(이후 아기)가 포함된 미래세대의 기후소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기후소송의 심판대상과 사건의 개요
청구인들이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 심판대상은 구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과 그 시행령, 그리고 시행령 변경을 통한 대통령의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폐지행위, 현재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과 그 시행령, 그리고 이에 따라 정부가 수립한 '제1차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부문별 및 연도별 감축목표와 재정투자계획 등이었다.
청구인들은 위의 심판대상 법률, 시행령, 기후위기대응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이 파리협정 등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청구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에 불충분한 목표를 설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들 심판대상 공권력작용들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청구인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 평등권, 재산권, 환경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 기본권을 침해하는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는 네 건의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병합하여서, 2024년 8월 29일, 심판대상 중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 및 2026년 2월 28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잠정적용 결정을 내렸다.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이유 : 2031년부터의 감축목표를 규정하지 않았다
심판대상 중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을 보면, 2030년까지의 목표만 규정하고 있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대하여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시점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고,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다. 따라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은 기후위기라는 위험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 해서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고, 법률유보원칙에도 반하는 것으로서,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단순 위헌이 아닌 잠정적용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이유
잠정적용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순위헌결정을 내려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의 규범영역 전부에 대한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 2050년의 탄소중립 목표 시점 이전에 존재하는 정량적인 중간 목표가 사라져서,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후퇴하는 더욱 위헌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입법자가 구체적 입법형성권한을 행사하여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정량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수준을 정하여, 합헌적인 상태로 회복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2030년 이후의 탄소감축목표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위헌적인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하여, 2026. 2. 28.을 시한으로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한 것이다.
그와 함께 헌법재판소는 입법시한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미 설정된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까지 그 효력을 상실시키는 것은,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정량적 수준을 계획하고 그 이행을 관리하여야 한다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도 함께 지적하였다.
결정의 의미 :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헌법불합치결정
헌법재판소의 2024년 결정은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결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헌법재판소 결정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탄소감축목표 입법과, 이를 시행하는 적극적 정부 작용을 이끌어내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결정의 한계 :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의 위헌성도 엄격 심사했어야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에 있어 입법형성권한을 넓게 인정하지 말고 보다 엄격하게 심사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는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내용(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으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시행령에서 40%로 규정한 것)이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전지구적 온실가스감축 기준에 불충분하여서,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본계획 중 부문별 및 연도별 감축목표가 감축경로상 중장기 감축목표를 달성하기에 불충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세 번째는 온실가스배출량 기준을 산정할 때 기준점과 목표점의 수치 산정 기준을 달리하면 합리적인 감축경로가 관리되지 않는 것인데, 부문별 연도별 감축목표에서 정부가 '기준연도 총배출량 - 목표연도 순배출량'으로 목표치를 산정하는 것은 감축목표 정량화 체계를 변경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보호수준을 낮추는 것이어서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 세 번째 문제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중 5인이 위헌의견을 냈으나 헌법소원심판 인용을 위한 정족수인 6인 위헌의견에 이르지 못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질문 던지는 미래 세대에 적극적으로 답할 의무
지구의 기후시계가 더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지 전 지구적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기후소송 헌법불합치결정은 국내적으로 탄소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입법 및 행정의 적극적 작용을 촉구하는 사법판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현재까지의 탄소감축 목표 설정 및 이행 수준에 대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요청되는 국가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심사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앞까지 다가온 지구의 기후시계 앞에 국가의 탄소감축 이행작용에 대한 넓은 재량 여지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가 쓸 수 있는 탄소량이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미래세대 앞에 보다 적극적으로 답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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