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발달장애인 박초현씨(오른쪽)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층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참고인 대기실에서 조력자인 염찬빈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와 함께 발언문을 읽으며 질의응답을 준비하고 있다.
복건우
1시간 뒤 속개된 국정감사장에 조력자로 함께 들어간 찬빈(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 앞에 앉은 초현은 다른 증인·참고인 사이에서 발언 순서를 기다렸다. 국회에 도착한 지 꼬박 8시간 끝에 초현의 차례가 왔다. 그가 8시간 전부터 말하고 쓰며 담아뒀던 문장들을 하나하나 소리내어 읽었다.
"저는 박초현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20년간 살다가 올해 초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지금은 자립해서 살고 있습니다."
초현이 처음 꺼낸 단어는 '시설'이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을 때 그는 집단거주라는 특성상 획일적인 관리와 통제를 받았다고 했다. 삶보다 죽음을 더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했다.
"시설에서는 다른 사람이 짜놓은 대로만 사는 삶이었습니다. 저보다 더 중증인 장애인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시키는 일을 악착같이 해야 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설을 꼭 나오고 싶었던 이유는 죽지 않고 싶어서였습니다."
죽지 않겠다는 결심은 '탈시설'을 꿈꾸게 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다시는 시설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올해까지만 해도 체험홈(자립생활 전 중간 단계)에 살며 자립을 준비하다 지난 6월에야 탈시설한 초현은 '발달장애인은 탈시설할 수 없다'는 인식이 세간의 편견에 불과하다고 했다.
"시설에선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무조건 허락을 맡아야 했는데, 이젠 허락 맡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이런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계속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립하고 나서 보니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돈이나 자립 기술이 아니라, 자립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자립을 도와주고 나가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는 시설에서 그렇게 오래 안 살았을 거예요."
'탈시설'은 '시설'에 남은 삶들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 2021년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은 여전히 시설 안에 사람들을 남기고 있었다. 올해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2025년부터 본격적인 탈시설 지원사업에 나서는 게 정부 로드맵의 뼈대다.
"시설에 있을 때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초현이 너는 자립할 수 있지만 장애가 심한 언니, 오빠, 동생들은 탈시설하면 갈 곳이 없어'라고 했습니다. 거기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시설에서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데 시설에서 20년 넘게 산 사람들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시설에 들어갈 땐 들어가고 싶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탈시설할 땐 진짜 나가고 싶은 건지 아닌지 확인하는 건 잘못됐습니다."
읽어가던 발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앞두고 초현은 "의원님들"과 "보건복지부 장관님"을 불렀다.
"의원님들! 보건복지부 장관님! 저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여기 계신 의원님들과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의 자립을 막지 말고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자립할 수 있을지 고민해 주세요.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다 같이 살아요!"
의원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