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실어증 환자도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환자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치료사의 역할

등록 2024.10.28 10:28수정 2024.10.28 10:28
0
원고료로 응원
'언어재활사의 말 이야기'는 15년 넘게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경험한 이야기들로, 언어치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기자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저 우는구나 얼굴을 보고서야 알 수 있을 뿐. 목에 기관 절개 튜브를(기도에 튜브를 삽입하여 침과 분비물로 인한 기도 폐쇄를 예방하고, 산소 공급을 하기 위함) 끼고 있는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관 절개 튜브는 종류에 따라 발성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산소 공급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설계된 안전장치 달고 있어서 소리를 낼 수 없다. 우리의 목소리는 공기가 성대를 통과하며 성대를 진동시켜 나는 구조인데, 이 기관 절개 튜브는 성대 아래쪽에 삽입하기 때문에 공기가 성대를 통과할 수 없고, 성대를 진동시킬 수 없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던가! 소리치는 듯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고 "어어어" 하는 모습의 그녀를 보고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좀 더 돌아봐줄까? 이럴 때 한 글자를 더 말하는 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들이 떠돈다. 지금의 치료가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과연 도움이 되고는 있는 걸까?

워낙 실어증이 심한 전 실어증(Global aphasia) 상태인 데다가, 오른쪽 마비가 있어서 글자를 쓰는 활동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목소리가 나온다 한들 말을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것 알아요.
제가 말하실 수 있게 도와 드릴게요.
당장 소리가 나지 않지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저를 보세요.
목소리를 내지 않고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입을 움직여 말할 수 있어요.
표현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치료사가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짐작만 할 뿐. 처음 임상을 할 때 '왜 울까? 치료받는 게 싫은가?' 쪽으로 생각을 했더라면, 지금은 '뭔가 불편한 게 있구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miguelbautistadp on Unsplash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하기 전의 아기들이 자신의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하듯이, 전 실어증 환자들의 경우에도 말을 잘하지 못할 때, 목소리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는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의 치료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환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노래 부르기를 같이 해본다. 손을 잡고 박자를 맞추면서 같이 부르는 것. 바라보고 있던 보호자가 놀라며 눈물을 짓는다. 우리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아무 표현도 안 되고, 아무 말도 못 하던 환자인데도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서 함께 입술을 움직이고 있는 그녀는 누가 봐도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말하기를 관여하는 언어중추는 보통 좌뇌에 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때 가사는 좌뇌가, 멜로디 영역은 우뇌가 관여해서 노래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부분부분 발음이 불분명하고 다르게 나와서 노래를 하네 정도로만 인식할 수 있다). 말을 못해도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그것이 말하기의 단초가 되어서 점점 더 말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멜로디억양기법(MIT)라고 한다.


그녀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우울해하며 치료에 비협조적이던 그녀가 노래를 같이 부르다니 나도 사실은 감동이다. 여러 방법들을 시도해도 안 되던 그녀에게 오늘의 노래가 닿아 표현으로 나오다니 말이다.

언어 치료는 국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니다. '언어'를 그저 '말'에 국한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오늘이 그녀가 다시 말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실어증 #울음뒤에숨겨진마음 #우리할머니같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하루하루 조금 더 나은 나로 만드는 시간을 소중히 채웁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퇴원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

AD

AD

AD

인기기사

  1. 1 땅 파보니 20여년 전 묻은 돼지들이... 주민들 경악 땅 파보니 20여년 전 묻은 돼지들이... 주민들 경악
  2. 2 재취업 유리하다는 자격증, 제가 도전해 따봤습니다 재취업 유리하다는 자격증, 제가 도전해 따봤습니다
  3. 3 윤 대통령 10%대 추락...여당 지지자들, 손 놨다 윤 대통령 10%대 추락...여당 지지자들, 손 놨다
  4. 4 '기밀수사'에 썼다더니... 한심한 검찰 '기밀수사'에 썼다더니... 한심한 검찰
  5. 5 보수 언론인도 우려한 윤석열 정부의 '위험한 도박' 보수 언론인도 우려한 윤석열 정부의 '위험한 도박'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