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7.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조경일 저 친구, 비전향 탈북자야."
내가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비전향 탈북자라니. 상당히 흥미로운 표현이다. 나의 한국 생활은 올해로 20년 차다. 그동안 정치학을 공부하고 통일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여러 호칭을 들어봤다. 하지만 '비전향 탈북자'라는 표현은 처음 들었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하도 다양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익숙한 용어로 부른다.
탈북자, 새터민, 탈북민, 자유민, 북한이탈주민, 북향민, 통일민, 경계인… 저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당사자들이 불리기를 원하는 용어로 합의된 적은 없다. 모두 정책 입안자들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호칭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 국민통합위원회에서 '북배경주민'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안하면서 북한에서 온 당사자들조차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야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였다.
'북한이탈주민'을 호칭하는 용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그동안 몇 번 있었다. 과거에는 귀순용사, 귀순동포 등으로 호칭을 붙였지만 1997년 '북한이탈주민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법률용어로 북한이탈주민으로 결정됐다. 그래서 줄여서 '탈북민', '탈북자'로 호명해왔다. 여기서 '자'는 한자로 '놈 자(者)'이므로 당사자들의 불만이 컸다. 우리가 제3국에서 이민 온 다문화인들에게 이름 앞에 "이민자 ㅇㅇㅇ"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말이다.
'북향민'이라고 하는 이유
몇 해 전부터는 '북향민'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됐다. 이 용어는 당사자들의 선호에 따라 나온 용어이다. 내가 이 글에서, 또 앞으로 북향민이라고 호칭을 쓰는 이유다.
나는 기존의 탈북자, 탈북민 호칭 대신 '북향민' 호칭을 쓰자고 언론 기고를 비롯해 여러 글에서 주장해 왔다. 북향민 호칭에 대해서는 2023년 12월 말에 출간된 나의 책 <리얼리티와 유니티: 북한이탈주민의 이슈와 비전에 관한 보고서>에 자세히 썼다. 북향민(北鄕民)은 고향을 북쪽에 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다.
이와 비슷하게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실향민(失鄕民)이 있다. 둘 다 고향이 북쪽이지만 실향민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도 그들의 터전과 고향은 이제 없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강산이 일곱 번 변하고도 남았다. 이제는 이미 '조선(朝鮮)'이라는 나라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살아갈 뿐이다. 반면 북향민들은 그 곳에 여전히 가족들이 남아있고 심지어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다.
내가 북향민이라는 용어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존재의 정체성과 정당성 때문이다. 탈북한 당사자들은 '탈북'이라는 정체성으로 호명되기를 거부하지만 한국 사회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는다. 북향민, 탈북민, 탈북자, 새터민 등 어떤 호칭으로 부르든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늘 타자화(他者化) 된 존재들, 즉 이방인이다.
이 호칭들은 모두 직업이나 기술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정체성을 호명하는 용어들이다. 아마 어떤 방식이 됐든 통일이 되기 전에는 정체성으로 호명되는 일이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이왕 그렇다면 차라리 북향민으로 부르자는 게 나의 주장이다. 어쨌든 나는 앞으로 북향민으로 호칭을 통일해서 쓰고자 한다. 다시 돌아가서, '비전향 탈북자' 용어로 가보자.
정치적 시민 자격을 박탈하는 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