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지하호 설명문화해설사님에게 부평지하호의 위치에 대해 듣고 있다.
김경희
'부평지하호 달빛 기행_2024 기억하라 부평지하호'는 부평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일제강점기 인천육군조병창의 지하공장인 부평지하호를 직접 걸으며 '아시아 태평양 전쟁유적'을 체험해 보는 것이다.
탐방은 한 달 한 번 진행되는데, 산곡동 인평고등학교 인근 구세군 어린이집 앞 공터에서 시작한다. 함봉산 산길을 따라 걸으며 부평 지하호의 흔적들을 답사하게 되며, c구역 6번 지하호 내부를 탐방하는 것으로 끝난다.
전체 탐방 시간은 대략 한 시간 30분 정도다. 사유지에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방문이 어렵고 부평문화원의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다. 전체 탐방은 부평문화원 문화 해설사님의 안내로 진행된다.
전쟁과 강제 동원의 흔적
부평 지하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리플릿 안내 글에 따르면, 지하호는 조사를 할 당시인 2016년만 해도 '새우젓 굴'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다만 몇몇 동네 어르신들의 기억에서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증언이 있었고, 이후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 역사 전문가들과 교류를 통해 일본군 극비 문서를 발견하게 되어 인천 육군 조병창의 지하공장(무기 생산 및 보관)'으로 확인되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현지, 아시아 곳곳에 부평지하호와 유사한 구조물을 건설하였다. 이중 부평에 건설된 것은 지금까지 총 29개 정도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부평 지하호가 조병창을 건설하기 위한 굴이라는 사료를 확인한 후 일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고, 지하호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의 증언을 확보하게 되면서 강제동원의 전모가 하나 둘 알려지기 시작했다.
증언에 의하면 부평 인근뿐 아니라 멀리 경기도 등지에서도 학생들을 동원하였다. 물론 자신이 어디로, 왜 가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학생들은 이곳에서 1일 2교대, 매일 12시간씩 돌산을 파는 강제 노동을 했다. 그들은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을 맞이했던 1945년 8월 15일 당일에도 돌산을 파고 있었으며, 교대 인원이 오지 않아 굴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해방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이곳에 병기를 생산하는 공장(조병창)을 만들어 중일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병기 보급 문제를 하고자 했다. 다만 조병창을 완성하기 전에 일본이 패망하여 그 전모가 알려지기도 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