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나누기가 아니라, 러너의 목표와 수준에 따른 구분 아닐까. '계급'이란 말은 위트고. 내겐 이 표가 일종의 정보로 보인다. 아래 가격대가 텅 비어 매우 아쉽긴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하지만 '급 나누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걸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고, 편을 가르고, 차별로 연결될 때가 아닌가? 서울대 나왔다고 우대하고, 임대 단지에 산다고 등굣길을 막는 것처럼 말이다.
비싼 운동화 신었다고 우대하거나 싼 운동화 신었다고 소외시키는 러닝 문화가 있을까? 아, '초보자 카본화 착용 금지' 유머는 있다. '못 달리니까 비싼 운동화 신을 자격이 없다'는 게 아니라, '부상 방지를 위해 신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급 높은' 러닝화 신은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고, '급 낮은' 러닝화 신었다고 무시하는 러너가 있을까? 그러니까 달리기의 세계에서 '달리기'가 아니라 '러닝화'로말하려는 사람이?
반년 차 러너지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러너라면, 달리기를 즐길 줄 알거나, 기록이 좋거나, 꾸준히 달리거나, 실력에서 확연한 변화를 보이거나, 도전을 멈추지 않거나, 핸디캡이 있음에도 달리거나, 달리기로 좋은 일을 하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선망을 품고 스스로도 그렇게 성장하려 한다고. 러닝화는 잘 달리기 위해 신을 뿐.
20,30대가 달리기를 많이 하면서, 착장에 더 신경 쓸 수는 있겠다. 운동화뿐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 예쁘게, 더 멋지게, 더 힙하게 입고 신고 쓰고 차는 것이다(이런 건 눈에 잘 띈다). 그런데 그건 당연하지 않나? 사춘기 학생들이 친구 따라 스타일이 비슷해지고, 엄마들이 자신보다 아이를 치장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처럼. 보통의, 본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도, 저 '계급도'만 보고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특정 러닝화를 덜컥 사지는 않을 것 같다. 설사 처음 한 번 그랬을지라도, 계속 달리기를 한다면 다음엔 참고해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화를 찾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달리기를 이어갈 수 없을 테니까.
마음을 주게 되면 쓸 수밖에
ㅡ저도 한강에서 가끔 달려보는데, 요즘 느끼는 게, 예전에 골프 때처럼 요즘 달리기도 험블한 운동이 아니고, 패션이 장난이 아니야. 완전... 풀... 풀로 갖춰놓고...
ㅡ색깔도 깔 맞춤이 돼야 되고, 양말까지...
ㅡ브랜드도 통일시키죠.
ㅡ장비가 비싼 건지 처음엔 몰랐다가 저도 배웠을 거 아니겠어요. 러닝화도 비싸더만요.
ㅡ러닝화도 비싼 건 정말 비싸요.
ㅡ달리려면 팬티도 사야 되고, 벨트도 사야 되고, 반바지 따로 사, 신발 사야지, 머리띠 사야 되고. 양말도 새로 샀어. 안경도...
ㅡ저는 안경까진 아직 안 갔는데, 도구가 뭐가 있냐면, 가민워치를 하나 사줘야 돼. 그리고 샥즈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이어폰이 있어요.
ㅡ아, 골전도! 그것도 엄청 쓰더만... 가민워치에다가 저거 두 개면, 벌써 근 50 썼네.
ㅡ50 더 쓰죠.
ㅡ잘 뛰시는 분들? 다 갖추는 거예요?
ㅡ아, 그게 왜 그러냐면, 양말만 바꿔도 느낌이 달라요. 진짜로. 양말이 뭐라고... (양말 설명 한참) 접지력이 달라요.
ㅡㅋㅋㅋㅋㅋ
ㅡ지금 비웃은 거예요? 코로 웃은 거 같은데?
ㅡ이해할 수가 없어. 이해할 수가 없잖아.
ㅡ이 동네 세계에 그런 게 있다고요~
ㅡ이게 왜 그러냐면, 왜냐. 너무 힘들잖아. 진짜 너무 힘드니까, 그 미세한 차이에 위안을 받는 거야.
ㅡ진짜 그게 있어.
ㅡ애초에 안 달리면 되는 거잖아.
ㅡ건널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구나. 달리는 세 명과 안 달리는 두 명과.
/팟캐스트 <손에 잡히는 경제>, "러닝이 언제부터 이렇게 비싼 취미가 됐나요" 중에서.
이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좀 웃었다. 그러니까 러닝화뿐 아니라 구매해야 할 것들은 온몸으로 확장되는데, 이에 대해 '달리는 사람'과 '달리지 않는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선'이 정말 있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 원래 마음을 주면 돈, 시간, 에너지 등 내 것을 쓰는 데 인색하지 않게 되니까.
물론 달리는 사람이라 해도, 사람마다 가치관과 소비습관 그리고 경제적 상황과 여건 등이 다르다. 그에 따라 실제 구매 양상은 다를 것이다. 그래도 각자 왜 그러는지 그 마음은 서로 알아줄 것 같다. 어느 부분에서 만족하거나 실망하고, 또 어느 시점에 시행착오를 겪고 교훈을 얻거나 무감해지는지 역시 다를 테지만.
아, 그나저나 나는 러닝화 쇼핑을 또 해야 한다. 온 가족이 '가족런' 마라톤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몇 번 연습을 하더니 딸들도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알맞은 러닝화는 필수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