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환 '어부의 낮술' 대표. 2024. 9. 14
문슬아
'저승서 돈 벌어 이승자식 먹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다 일은 험하고 고되다. 어부들에게는 시시각각으로 변용하는 파도에 따라 작업 여부나 어업량이 결정된다. 사람들에게 바다는 낭만일 수 있지만 어부들에게 바다는 때때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극한의 작업장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어부들도 제 자식에게는 업을 물려주는 걸 원치 않았다.
"옛날에는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배탄다'는 얘기를 흔히 들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제가 어부를 한다고 하면 무척 반대가 심하셨어요. 뱃일은 거칠고 힘들고 못 배운 사람이 한다는 인식이 많았으니까요. 저는 어부에 대한 귀천의식이 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마침 제가 하는 일이 예술이다보니 이런 생각을 나만의 방법으로 좀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고유한 맛과 멋을 자랑하는 가양주처럼 이 세상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경환씨는 어부와 어민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면서도 낭만적으로 대상화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어부의 낮술'을 매개체로 적극 활용하려 한다. 하지만 술 말고도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그는 말한다.
경환씨의 본업은 미술작가다. 동양화가인 아내 김소정 작가와 한 팀으로 고성군의 문화와 역사, 어촌의 생활모습등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소정·엄경환 작가는 '서울의 건기'(서울, 사이아트도큐먼트), '빌라 다르 Villa D'Art 2021'(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연결된 풍경'(강릉, 대추무아트센터), '지구를 구하는 멋진 이야기들' (강릉, 2024 문화올림픽, 경포해변) 등 다수의 전시회를 열었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제 2회 런던한류축제' 특별기획전시(<Korean Iconic; Echoes Now> Hanmi gallery, 런던, 영국)에서 고성군 내에서 벌어졌던 사건인 '납북어부' 사건을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작품으로 시각화했다. 현재는 서울 APO project <우리는 끝없이 흐른다> 전시를 앞두고 있다.
"저와 아내는 부부 작가인데, 이런 귀천의식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어요. 그물과 비단을 소재로 작업을 했었는데요. 비단은 값비싼 고급 천이지만 그물코가 아주 작으면 곧 비단처럼 고운 천과 다름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비단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촘촘한 그물처럼 보이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삶을 가까이서 보느냐 멀리서 보느냐에 따라 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단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결국 천한 것과 귀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하게 하죠. 어부인 아버지를 보며 삶의 가치를 생각했고 그물과 비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